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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설지선-가황자료실/남인수★가요일생

가요황제 남인수 님을 기리며 - 김수호 (1940~ )

설지선 2022. 8. 30. 10:39

 

 

가요황제 남인수 님을 기리며 - 김수호 (1940~ )

 

 

가왕 중의 왕, 가요황제歌謠皇帝 남인수 님!

콩쿠르 대회나 노래자랑 출신도 아닌

님은 타고난 재능을 열여덟 학생복에 깊이 품고

어느 날 레코드사에 불쑥 나타났지요.

님과 평생을 같이한 작곡가 박시춘 선생이 증언하고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확인했소이다.

님은 ‘한국 가요사에서 백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미성 가수요, 3옥타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님의 맑은 생수 음색에 고른 옥구슬 비브라토,

대지의 바람 긴 호흡과 산과 바다 휘젓는 가창력에

감전된 듯 날개 단 듯 하나가 된 청중들,

최대 라이벌 현인 선생마저 감탄을 불금했지요.

님이 세상 뜨자 모창가수가 줄지었고

의도적인 매도罵倒에도 대중가요의 주축무대에선

님은 늘 윗자리에 현재형으로 살아 있소.

 

데뷔곡이나 진배없는 '애수의 소야곡'

억눌렸던 대중의 감성을 깨치며 스타덤에 오른 뒤

'꼬집힌 풋사랑' '감격시대' 등으로

사랑과 청춘을 앞세워 대중과 호흡하면서도

태평양전쟁 때엔 일경의 색안경 너머에서

'울며 헤진 부산항' '낙화유수' ‘서귀포 칠십 리

님의 노래는 민족 정서의 각성제가 

님의 음성은 식민 극복의 위로제가 되었소.

 

해방 후 '가거라 삼팔선' '달도 하나 해도 하나'

민족의 심금 끊기는 통한의 피를 흘리며

변변한 동요도 없는 아이들의 감성도 일깨웠소.

님은 성악을 사사, 차원 높게 발성을 다듬고

앵콜 곡으로 가곡 희망의 나라로를 즐겨 불렀소.

6.25 땐 군예대에서 봉사하다, 휴전 되자

'이별의 부산정거장'에서 피난살이 설움 실은

긴 열차의 기적을 한껏 울렸소.

 

'기다리겠어요'를 비롯해 다양한 리듬의 노래로

대중가요의 업그레이드에 동참하면서

'산유화' '청춘고백''추억의 소야곡'에 이어

한 많은 백마강등에서 보인 리릭 테너다운 가창력,

대학생 합창단의 '4월의 깃발' 솔로로 등장하여

유행가 가수의 위상을 끌어올렸소. 그러나

대동아전쟁이란 광란 속에서 억지로 부른 7곡이

반백 넘은 백골에 친일가수란 오명을 씌웠소.

 

작고 3개월 전까지 각혈하며 취입한 향년 44,

식민의 질곡과 전쟁의 참화에 으깨지는

민족 정서를 함양 위무하는 1,000여 곡과 더불어

레코드가수협회와 한국연예인협회를 이끌며

쌓은 한국대중가요는 사방으로 빛을 발하고 있소,

님은 아직도 큰 별로 반짝이고 있소.

 

우리 가슴에 둥지 튼 민족가수 남인수 님!

정통 트로트의 전범典範이란 징표가

바로 사상 최초 연예협회장이 아니겠소이까.

민족적 자해 행위의 굴레 벗고

가요황제로서 명예를 회복하고 아울러

K-트로트에서 솟는 감정의 여울이 반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가기 두 손 모아 빕니다.

 

가요황제 남인수 님! 고맙고 사랑합니다.

 

(23-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