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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마음에 심은 씨앗 [문화/ 2022-06-15]

설지선 2022. 6. 15. 19:17

[유희경의 시:선] 마음에 심은 씨앗 [문화/ 2022-06-15]






    삽 - 이덕규


    그대 마른 가슴을
    힘껏 찍어,
    엷은 실핏줄들이 뒤엉킨
    따뜻한 속살 속에
    한 톨의 씨앗을 묻고
    다독거려주는 일

    더러는. 그 속에 박힌,
    울혈 덩어리 하나 캐내기 위해
    그대와 함께
    온몸이 저리도록 울어도 보는 일


    - (이덕규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마음에 심은 씨앗



정산 걱정으로 온밤 잠들지 못하다 새벽쯤에서야 겨우 눈을 붙였던 날 아침. 간신히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고, 더 잘 수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해보는 아침. 그런 날엔 쓸데없이 날씨가 좋고. 명명백백한 볕 아래 나는 더 초라해지고.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는 바람에 폭발하기 직전이 돼버리는 그런 아침에. 나를 구해주는 것은 뜻밖의 것들이다. 만져질 듯 가까운 뭉게구름. 그것은 참 보드라울 것 같다. 버스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이 노래에는 사연이 있다. 한때 마음 앓이의 기억이다. 그때는 울었고 지금은 웃는다. 정류장 근처 떡집에 모여 있는 아이들. 어린이집에서 산책을 나온 모양이다. 알록달록 생기 넘친다. 와글와글 요란함마저 사랑스럽다. 그들을 보는 사람들마다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리하여 막상 내 자리에 도착했을 적에는 제법 살 만해지는 것이다. 온통 파헤쳐져 폐허가 된 몸과 마음에 구름이며 노래며 아이들의 싱그러움이 무슨 도움이 되나. 그런데도 그것들이 작은 씨앗처럼 심겨 싹을 내고 나무로 자라 우렁우렁 잎을 틔워내는 것이다. 한여름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지쳐버린 내 위에서 한들거리는 것이다. 다 별일 아닌 듯싶다. 잠이야 퇴근해서 일찍 누워 이루면 될 것이며, 걱정거리야, 하나하나 차근차근해 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를 잘 지내보자꾸나.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듯 혼잣말을 한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깊이 숨을 마셔보았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