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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감정의 평균 - 이정록 (문화/ 2022-0525

설지선 2022. 5. 26. 09:25

[유희경의 시:선] 감정의 평균 - 이정록 (문화/ 2022-0525]





    감정의 평균 - 이정록


    부푸는 무지개를
    슬그머니 끌어내리고
    뚝 떨어지는 마음의 빙점에는
    손난로를 선물할 것

    감정의 평균에 중심 추를 매달 것

    꽃잎처럼 달아오른 가슴 밑바닥에서
    그 어떤 소리도 올라오지 않도록
    천천히 숨 쉴 것

    불에 달궈진 쇠가 아니라
    햇살에 따스해진 툇마루의 온기로
    손끝만 내밀 것


    - 이정록 ‘감정의 평균’(시집 ‘그럴 때가 있다’)



마주 앉은 선배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으로, 여러 점에서 탁월하지만 그중 가장 감탄할 만한 면모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심지(心志)에 있다. 그와 여러 해 알고 지내며 함께 일을 해본 적도 있는데 한 번도 그가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긴커녕 매사 신중하게 판단하고 주변을 다독이는 것이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심히 챙겨주는 사이 어느새 그의 도움을 받고 있는 나와 주변을 발견하는 때가 적지 않다.

이렇게 마주 앉게 된 까닭도 그의 마음 씀 덕분이다. 선배와 달리 감정적인 나는 일희일비가 일상이곤 한데 방금 전에도 어떤 일로 흥분해 몹시 화를 내고 난 다음이었다. 때마침 서점에 방문한 선배는 눈 벌게진 나의 꼴을 보고는, 나가서 차나 한잔 하자고 권했다.

찻집에 앉자마자 나는 내게 들이닥친 일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이 선배라도 되는 양 떠드는 동안 선배는 맞장구를 치는 것도 지청구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듣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나는 진정이 됐다. 후회와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선배는 어쩜 그리 침착해요? 화를 내기는 해요? 화제를 돌리려는 나의 딴청에 선배는 픽, 웃으며 나도 사람인걸요 하는 거였다. 근데 좀 느려요. 막상 화를 내려고 보면 한밤에 혼자더라고요. 그래서 이불이랑 베개에 화를 내죠. 어제도 두들겨 팼는걸. 창문 열어놓고 팡팡. 그렇게 말해서 우리는 같이 웃었다. 화기가 가라앉아 온기가 되고 어쩐지 훈훈해졌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