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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작약주간의 기쁨 [문화/ 2022-0608]

설지선 2022. 6. 8. 19:02

[유희경의 시:선] 작약주간의 기쁨 [문화/ 2022-0608]





기뻐의 비밀 - 이안


내가 기뻐의 비밀을 말해 줄까?
기뻐 안에는
이뻐가 들어 있다
잘 봐
왼손으로 ‘기’, 오른손으로 ‘뻐’를 잡고
쭈욱 늘리는 거야
고무줄처럼 말이야
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뻐
어때, 진짜지?


(이안 동시집 ‘기뻐의 비밀’)

 

 

작약주간의 기쁨


봄 끝 여름 시작쯤 꽃집마다 가득한 ‘작약(芍藥)’. 이름 참 예쁘다. 야무지게 똑 떨어지고, 쉽게 허물어질 것 같지 않고, 그러면서도 보드라운 면도 엿보인다. 작약처럼 이름값 하는 꽃이 또 있나 싶다. ‘작약’이란 단어에는 여러 뜻이 있다. 폴짝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의미하기도 하고, 가냘프고 아름답다는 뜻도 있다. 사전에는 없지만, 약속(約)을 만든다(作)가 될 것도 같지 않은가. 날 좋을 때 좋은 이와의 약속이라니. 이때의 마음은 부풀어 만개하는 작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은 매년 5월이면 특별한 주간(週間)을 마련한다. 우리는 그 1주일 동안을 ‘작약주간’이라고 부른다. 서점에 작약을 한 송이 건네주면 답례로 시집을 선물하는 간단한 이벤트이지만 해마다 참여자가 늘어가고 있다. 이제는 은근 기대하며 먼저 물어보는 이도 적지 않게 됐다. 사실 장삿속의 셈법으로야 손해만 나는 일이다. 작약으로는 월세를 내거나 급여를 지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올해도 ‘작약주간’을 잇고 있는 것은 기쁨 때문이다. 작약을 건네는 기쁨. 작약을 선물 받는 기쁨. 그로 인해 시집을 선물 주고 또 받는 기쁨. 평소에는 느끼기 쉽지 않은 그런 기쁨들이 한 주 동안 서점에 쌓여 가득하다. 그 기쁨들이 모여 한가득한 작약 모양으로 예쁘다. 올해도 작약 구름이 내내 서점에 머물렀다. 모두 잊고 감탄만 할 만큼 아름다운 모양이었다. 이것이 손해와 이익을 따지지 않고 흡족한, 1년에 딱 한 번 있는 1주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충분한 까닭이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