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봄 - 주병권 (1962~) [조선/ 2022-04-11]
봄 - 주병권 (1962~)
지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아도
지난 계절은 돌아오고
시든 청춘은 다시 피지 않아도
시든 꽃은 다시 피고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아도
빈 술잔은 채워지고
짧지만 폐부를 찌르는 시. 다시 돌아오는 계절과 돌아오지 않는 시절의 대비, 다시 피지 않는 청춘의 비유도 훌륭하다. 내용도 좋지만 형식미도 갖추어 더 아름다운 시가 되었다. 두 행이 한 연을 이루는데, 모두 두운을 주었고 서로 상반되는 서술어를 붙였다. ‘지난’으로 시작한 1연, ‘시든’이 반복되는 2연, ‘빈’으로 시작한 3연. 빈자리를 빈 술잔이 메울 수 있을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어 더욱 커지는 당신의 빈자리. 봄꽃들을 보기가 괴롭다.
행의 끝에 ‘도’와 ‘고’가 엇갈려 반복되고 세 연이 모두 ‘고’로 끝난다. 보면 볼수록 그 완벽한 짜임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주병권 시인은 누구 못지않게 시를 사랑하고 언어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다.
그의 시집 『떠나는 풍경』에 좋은 시들이 많다. 이런 깨달음은 어떤가. ”노년은 겨울/ 삶도 죽음도 아닌 날들이 지나지/ 멀리 떠날 준비를 하며/기억들은 잊혀져가지” (‘사계의 삶’)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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