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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아이 - 허연 [문화/ 2022-01-05]

설지선 2022. 1. 5. 15:38

[유희경의 시;선] 아이 - 허연 [문화/ 2022-01-05]

 

 


    아이 - 허연


    아이는 파도를 믿고
    파도는 아이를 살려둔다

    둘은 그렇게 몇 시간을 논다

    아이는 조개껍데기를 손에 쥐고
    잠이 든다

    나는 그것을 본다
    세상의 모든 여름이었고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나의 전부가 나를 버려도 좋았다

    아이는 나를 살려둔다


    - 허연 ‘파도는 아이를 살려둔다-스텔라’ (시선집 ‘천국은 있다




친구 부부가 아이와 함께 서점에 놀러 왔다. 아이는 부쩍 컸다. 알아보고 활짝 웃는다. 희경이 삼촌, 하고 부를 줄도 안다. 눈높이를 맞춘 나에게 팔을 벌려주는구나. 아이를 당겨 품에 안는다. 다칠까 봐 슬쩍 힘을 풀고서.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보고 싶었음은 이런 것이겠다. 나는 그 작은 힘으로부터 순백의 진심을 읽는다.

나와 아이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문구점에 간다. 반년 전만 해도 둘만 외출하기는 어려웠다. 자란다는 것은 혼자 있는 법을 배우는 거구나. 아이는 씩씩하다. 참새처럼 조잘대면서 제 부모는 찾지 않는다. 아이의 말 태반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응응, 부지런히 대답해본다. 그러면서 혹시 아이를 해칠 무언가가 있지는 않은지 경계를 늦추기 어렵다. 작은 소음에도 나는 깜짝깜짝 놀라며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헤어질 때 아이는 우리 같이 살아요, 속삭인다. 나는 그 말이 간지러워 웃는다. 그래 그러자. 지킬 수 없더라도 약속을 주고받았으니 우리는 헤어질 준비가 되었다. 한두 시간이 지나면 너는 다른 놀이에 정신 팔릴 것이며 나도 내 일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그런다 해도 우리가 느꼈던 우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아이가 청년이 되고 나는 노인이 되어도 우리는 친구일 것이다. 나는 훗날 아이에게 양보할 것들을 떠올려 본다. 한참 고민하다 보니 새로이 찾아온 올해가 온전히 내 것만은 아닌 것을 알겠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