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 대추 한 알 - 장석주 {문화/ 2021-12-29]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장석주 ‘대추 한 알’(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장석주 ‘대추 한 알’(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한여름쯤 국가지원사업을 따냈다. 선정될 때는 기쁘고 준비할 때는 설레고 실행할 때는 즐거웠으며 정산을 하게 되자 더없이 괴로워졌다.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틀림없이 집행을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수치가 맞지 않았다. 되짚어보면 허술한 것투성이였다. 한 보름쯤 마음 앓이를 했나 보다. 어느덧 지원을 할 때의 패기와 포부는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두 번 다시 지원하나 봐라 후회에 후회만 거듭하게 되는 거였다.
연말의 들뜸으로 보내야 할 한밤. 엑셀 프로그램을 붙들고 앉아서 인과응보로구나, 중얼거렸다. 덜렁이는 성격 탓이다. 외로워졌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나도 모르고 있는데 누구인들 도와줄 수 있을까. 이리저리 계산해보고 숫자를 바꿔보다 말고,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만큼이나 좋은 결과를 얻는 것만큼이나, 이 착오 또한 귀중한 경험이 아니겠는가. “대추 한 알”이 탐스럽게 익으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견뎌야 하는가, 하고 나는 다시 화면 위의 숫자들에 집중해보는 거였다.
마침내 계산이 맞게 된 것은 자정이 넘은 새벽이었다. 절로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게. 인과응보라는 것이 꼭 나쁜 것이 아니지.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이번에는 엉망이었지만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겠다. 새로운 꿍꿍이를 갖게 되었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연말의 들뜸으로 보내야 할 한밤. 엑셀 프로그램을 붙들고 앉아서 인과응보로구나, 중얼거렸다. 덜렁이는 성격 탓이다. 외로워졌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나도 모르고 있는데 누구인들 도와줄 수 있을까. 이리저리 계산해보고 숫자를 바꿔보다 말고,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만큼이나 좋은 결과를 얻는 것만큼이나, 이 착오 또한 귀중한 경험이 아니겠는가. “대추 한 알”이 탐스럽게 익으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견뎌야 하는가, 하고 나는 다시 화면 위의 숫자들에 집중해보는 거였다.
마침내 계산이 맞게 된 것은 자정이 넘은 새벽이었다. 절로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게. 인과응보라는 것이 꼭 나쁜 것이 아니지.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이번에는 엉망이었지만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겠다. 새로운 꿍꿍이를 갖게 되었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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