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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날씨 이야기 - 윤은성 [문화/ 2021-09-08]

설지선 2021. 9. 8. 21:09

[유희경의 시:선] 날씨 이야기 - 윤은성 [문화/ 2021-09-08]






날씨 이야기 - 윤은성


단단하게 잠겨 있는 문처럼.
날씨란 많은 날을 떠올리게 하지만, 또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지. 일기예보를 듣는 것은 신나지는 않았잖아. 잃은 것이 있어도 되찾으러 오지 못하는 일상에게는. 점점 무표정을 배우게 하는, 지나가는 목소리들이 스쳐 가는 여기서는.

- 윤은성, ‘대림에서’(시집 ‘주소를 쥐고’)



가을은 날씨의 계절. 어떤 날씨를 맞이하게 돼도 불만이 없는. 불만이 없을 뿐 아니라 감탄하게 되는 계절. 그중 으뜸은 구월. 여름의 끝, 가을의 처음이 만나는 달. 하늘이 높아져 가고 볕은 느슨해지고 어디로든 나서고 싶어지는 달. 거짓말처럼 가을장마가 끝나고 그런 구월이 시작됐다.

현관문을 나서 몇 발짝 걷다 멈춰, 돌아가서 겉옷을 챙겨올까 싶다가 그래도 낮에는 덥잖아. 이 기온을 만끽하고 싶어서 내친걸음을 이어간다. 덥다고? 아니다. 따뜻하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한다. 둥글둥글하게 생긴 적운이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출근하지 말고 다른 곳에 닿고 싶다고 생각한다. 파도 소리 근사한 바닷가면 좋겠다, 나무 그늘이 있는 널따란 풀밭이어도 좋겠다, 생각한다. 이게 다 날씨 때문이야. 기분이 좋고 예기치 못한 들뜸과 설렘으로 기분이 저 구름처럼 부풀어간다.

버스 안에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나. 창밖을 보거나, 지난 어떤 날을 떠올리기에 바쁘겠지.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는 이 계절 만상을 책을 펼쳐 읽는 마음으로 살펴보라는 제안일 수도 있겠다.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으나,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납득해보는 것이다. 아마 버스에서 내려 서점에 닿을 때쯤이면 제법 두툼한 책 한 권을 읽은 기분이겠다. 그렇겠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