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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프랑스 와서 감사함을 전합니다" - 파리=이성훈 특파원 [조선/ 150613]

설지선 2015. 6. 15. 14:29

"이제야 프랑스 와서 감사함을 전합니다" - 파리=이성훈 특파원 [조선/ 150613]

6·25 영웅 몽클라르 墓 찾아간 한국인들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의 생 루이 성당 제단 아래에 있는 지하묘지는 프랑스 육군 최고 영예로 꼽히는 '파리 방위사령관' 중 무공이 뛰어난 이들이 묻힌 곳이다. 유족도 정부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지난 10일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지평사모)' 회원 5명이 성당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이곳에 들어섰다. 이들이 꽃을 놓은 곳에는 '몽클라르 장군 1964'라고 새겨져 있다. 지평사모 회장인 법무법인 아태 김성수(72) 대표변호사는 "65년 만에 드디어 직접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몽클라르(1892~1964) 장군은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프랑스군 600여명을 이끌고 참전했다. 당시 3성(星) 장군으로 이미 1·2차 대전과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활약했다. 프랑스 정부가 고령(58세)을 이유로 6·25 파병에 반대했으나, 그는 "자유를 지키는 데 나이가 문제 될 수 없다"며 직접 군인을 모았다. '대대급 병력은 중령이 이끈다'는 프랑스군 규정에 따라 중장 계급을 스스로 중령으로 강등시켰다.


	몽클라르 장군 묘를 찾은 지평사모. 왼쪽부터 김완배 전 육군 준장, 김덕형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성수 변호사(지평사모 회장), 딸 파비엔느 몽클라르, 박한빈 전 주불 대사관 무관, 오세종 전 장기신용은행장, 사위 버나드 듀포 전 육군 대령.
▲ 몽클라르 장군 묘를 찾은 지평사모. 왼쪽부터 김완배 전 육군 준장, 김덕형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성수 변호사(지평사모 회장), 딸 파비엔느 몽클라르, 박한빈 전 주불 대사관 무관, 오세종 전 장기신용은행장, 사위 버나드 듀포 전 육군 대령. /이성훈 특파원

몽클라르 장군의 프랑스군은 미국 23연대 5500명과 1951년 2월 13일 중공군 3만명을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에서 맞았다. 인해전술에 밀려 연합군이 계속 후퇴하던 때다. 장군은 소이탄과 기름으로 수제폭탄을 만들고, 죽음을 각오한 '20m 이내 근접사격 작전'과 백병전을 펼쳤다. 프랑스·미국 연합군은 군사적 열세에도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냈다. 이 전투가 6·25 전세를 바꾸어 놓았다고 전쟁사에 기록돼 있다.

'지평사모'는 이 전투를 기념해 2009년 만들어졌다. 지평리 부근에 개인 서고(書庫)를 가진 김 회장이 지인들과 함께 전투 기록과 인물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날 6·25 발발 65주년을 앞두고 '지평리 전투의 영웅' 묘를 한국인으로는 처음 방문했다. 참배에는 장군의 딸 파비엔느 몽클라르(64)와 프랑스군 대령 출신 사위인 버나드 듀포(71)가 함께했다. 파비엔느씨는 "아버지는 '언젠가 한국인이 내 무덤을 찾을 것'이라 했는데, 오늘이 그날"이라며 "아버지의 땀과 피를 잊지 않아 고맙다"고 했다. 오찬에는 몽클라르 장군과 함께했던 군인과 미망인들이 참석했다. 자크 그리솔레(87)씨는 "이런 역사를 함께 기억하는 것이 두 나라 우정을 위해 중요하다"고 했다. [파리=이성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