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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無産, 착취, 수탈, 민중… 어느 전교조 1세대의 '언어' - 박세미 기자 (조선/ 150209)

설지선 2015. 2. 9. 15:12

[기자수첩] 無産, 착취, 수탈, 민중… 어느 전교조 1세대의 '언어' - 박세미 기자 (조선/ 150209)



	박세미 사회정책부 기자 사진
▲ 박세미 사회정책부 기자
"국가기관이란 게 착취 계급의 대리기관인데, 저항하는 피착취 계급을 그냥 둘 리 없다."(서울 공립 중학교 정모 교사)

"남쪽 민중의 설움과 절망이 더 깊어지고 있다… 자본체제가 제3세계를 닥치는 대로 수탈해 가고 있다."(서울 공립 중학교 윤모 교사)

최근 두 전교조 교사가 전교조 게시판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을 일으킨 글의 일부다. 정 교사는 이슬람 테러단체 'IS'에 가입했다고 알려진 김모군을 향해 "성급하게 '얼른 돌아와!'를 외치고 싶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고, 윤 교사는 전교조 전 위원장의 유죄 판결 소식을 전하며 "인민의 힘으로 인민재판정을 만드는 게 민주공화국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는 글을 남겼다. 윤 교사는 사립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교직을 그만두었는데, 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윤 교사를 '비공개 특별채용'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둘 다 서울의 공립 중학교 국어 교사로, 모든 사회 문제를 자본(또는 국가) 대 노동의 대결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의 글엔 '무산 계급' '착취 계급' '민중의 설움' '자본체제의 수탈' 등 용어가 곳곳에 등장한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두 교사 모두 정년(停年)을 2~3년 앞둔, 다른 교사들에 비해 노(老)교사라는 점이다. 윤 교사와 정 교사는 올해 각각 59세, 60세로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전교조 내에서 따지면 1989년 출범·1999년 합법화 시절부터 참여한 '전교조 1세대'이고, 교사 정년이 만 62세인 점을 감안하면 모두 2~3년 내 교단에서 떠난다. 자본 대 노동의 단순화된 대결 구도, 옛 운동권 용어 등이 그들 글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늙어가는 전교조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전교조가 발간한 '조합원 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전교조 조합원(5만3208명) 중 연령대가 확인된 조합원(3만9798명) 가운데 20대 교사는 1000명이 채 안 됐다(985명·2.5%). 전체 교원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17.8%)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반면 40대 이상 교원은 전체의 68%가 넘는 2만7103명에 달했다. 전교조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에 이런 교사들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 주변엔 부단한 노력과 열린 사고로 나이 들어가면서도 끊임없이 어린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훌륭한 스승이 많다. 다만 두 교사처럼 철 지난 1970년대 운동권 논리에 갇혀 '수탈하는 국가·자본-착취당하는 노동자 계급'이란 이분법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걱정스럽다.

20대 교사들이 전교조를 외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계속돼온 전교조의 거리 투쟁, 특히 최근 맹렬해지고 있는 대정부 투쟁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부터 탈(脫)정치적 분위기에서 공부해온 20대 교사들에게 전교조의 강경함은 생경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논란 직후 약속이나 한 듯 "내 발언이 뭐가 문제냐"는 두 교사를 보면서, 이런 교사들이 원숙한 지혜가 아닌, 낡은 이념과 사고방식으로 전교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