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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내시(內侍)의 수명 - 오태진 (조선/ 120926)

설지선 2012. 9. 26. 10:30

[만물상] 내시(內侍)의 수명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조선/ 120926)



 

어느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내시(內侍)는 '씨 없는 수박' 같은 말이 나올 때마다 발끈한다. 자기의 성적(性的) 결함을 연상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장희흥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분석한 내시 성격과 딱 들어맞는다. 장 교수는 내시가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자격지심 탓에 온전치 못한 물건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말한다. 손잡이가 달아난 잔, 꼬리 없는 개 같은 것이다. 감정 기복이 심해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고 화를 냈다고 한다.

▶내시들은 어린이와 강아지를 좋아했고 자기를 버린 아버지는 예외 없이 증오했다. 같은 처지 내시끼리 단결심도 강했다. 후한(後漢) 대장군 하진(何進)이 환관을 몰살하려다 환관에게 살해된 것이 이름난 예다. 환관들은 하진을 '우리 종족을 멸하려는 놈'으로 간주했다. 조선 중종 때 개혁 사림(士林)은 내시의 결혼을 금하려 했다. 내시들은 훈구파와 짜고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을 꾸며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을 쫓아냈다.

▶내시들은 권력과 부(富)를 누리며 가정도 꾸렸다. 명문가들이 다투어 내시에게 딸을 주면서 연산군 때 내시 사위를 둔 조정 관리가 32명이었다. 내시들은 화자동, 지금 효자동에 큰 집을 짓고 살며 처첩을 거느리고 내시를 양자로 들였다. 그래서 성씨는 각기 달라도 족보가 있다. 고려 말 내시 윤득보를 시조로 삼아 1809년 내시 자손 777명을 실은 양세계보(養世系譜)가 대표적이다. 양세계보에 오른 내시 평균 수명이 70세에 이르러 같은 시대 양반가 세 곳 수명 51~56세보다 훨씬 길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거세돼 남성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은 것이 장수(長壽) 이유라고 한다.

▶WHO 조사에서 남녀 사망률 차는 20~24세에 가장 많이 벌어져 남자가 여자보다 세 배나 많이 죽는다. 사망 원인은 주로 자살과 피살, 사고다. 공격성과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무모한 짓도 무릅쓰게 만드는 남성호르몬 탓이다. 남성호르몬은 여성호르몬이 지닌 심장병 예방 효과가 없다. 그래서 심장병 80%가 남자에게서 생기고 심장동맥질환 사망률도 남자가 세 배 높다. 60대 이후엔 남성호르몬이 면역 체계를 흔들어 쉽게 병이 걸린다.

▶2004년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은 '거세된 남자가 보통 남자보다 15년 더 산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그러면서 "남자들이 얌전해지면 미국에서만 한 해 37만명이 목숨을 건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젊어서부터 남성호르몬을 일부러 억누를 수도 없고. 천생 기구한 것이 남자 팔자다. 젊어서 멋모르고 죽을 둥 살 둥 뛰며 가족 먹여 살리다 늙어서는 남성호르몬이 줄면서 아내 눈치 보며 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