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미래를 말하면서 구태를 보여주는 안철수 (동아/ 120925)
안철수의 대선 출마 선언은 감동적이지는 않았으나 모범생답게 해야 할 말은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경제민주화와 성장동력을 결합한 경제혁신과 안보와 균형을 맞추는 평화체제를 강조함으로써 경제와 안보에서 중도 성향을 드러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출마 예고편인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던 정치개혁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면서 정치개혁과 정치쇄신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에게는 선의의 정책경쟁을 해서 그 결과에 승복하자는 제안도 했다. 시민사회 후보로서 기성 정치인들의 구태와 부패에 자신은 책임이 없기 때문에 기존 정당 후보들에게 정치개혁을 하라고 떠미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기자회견에서 후보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야권 지지자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을 뱉었다. 후보 단일화는 기존 정치권의 구태정치 혁신과 국민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 조건부 단일화는 ‘비핵개방 3000’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조건부 포용정책보다 더 실현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정치개혁 후보를 자처하는 안철수는 구태정치에서 자유롭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필자가 본 며칠간의 안철수의 행보는 3김 시대의 구태정치보다 덜하지 않았다. 출마 선언과 함께 4·11총선을 총지휘한 박선숙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을 선대위 본부장으로 빼내옴으로써 3김 시대의 ‘의원 빼내오기’를 방불케 하는 구태를 저질렀다. 민주당을 약화시키고, 친노와 비노 간의 분열을 조장하며, 사무총장 박선숙이 갖고 있는 민주당의 정보를 얻는 정치공학적 효과를 거두었을지는 모르나, 안철수는 정치의 금도를 깨뜨리는 불공정 게임을 정치개혁 후보가 서슴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선대위에 ‘야당인사 빼오기’ 웬말
박선숙 못지않게 야권 지지자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이헌재 전 부총리가 안철수 출마회견장에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전 부총리는 김대중, 노무현 양대 정부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담당한 책임자다. 그러나 현재의 시대정신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인해 초래된 1 대 99의 양극화 사회를 치유하라는 것이고, 이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는 마당에 과거를 대표하는 이헌재를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와있다”고 선언하는 자리에 동석시켰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안철수의 지근거리에서 ‘안철수의 생각’을 다듬고, 바꾸고, 굳히는 역할을 하는 선대위 측근들에 있다. 언론은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안철수 선대위 사람들을 고 김근태 계열, 박원순 서울시장 계열,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라고 이야기하나, 필자가 보기에는 안철수 선대위의 특징은 검사와 변호사 출신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안철수는 상대 후보의 네거티브 공격에 대한 방패막이로 율사 출신 측근들이 필요할지 모른다. 뒤늦게 선거전에 뛰어들어 박근혜와 문재인에 비해서 검증이 아직 덜 된 안철수이기에 더욱 네거티브 공격을 방어해 줄 법률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태섭 변호사는 박근혜의 측근인 정준길의 네거티브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서 박근혜를 곤궁에 빠뜨린 바 있다. 그러나 율사 출신은 선대위에서 법률구조단 정도의 역할을 맡아야지 비서실장, 상황실장 같은 요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 법조인들은 법가적(legalist) 마인드를 갖고 있어서 근시안적이고, 기계적이고, 반정치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며, 권력지향적이다. 그들이야말로 앞으로 전개될 야권 후보 통합을 어렵게 할 장애물이 될 것이다.
안철수에게 맡겨진 시대정신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1 대 99의 사회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는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 준 국민들의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는 안철수 표 ‘힐링 브랜드’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반드시 야권 후보 통합을 성사시켜 정권교체를 실현해야 하고,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서 자신을 던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안철수는 2011년 서울시장 경선에서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안철수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가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할 일은 정권교체라는 대의이고, 이를 위해 야당 후보와의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통합적 단일화를 이루어 야권 전체의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 플러스 정서를 해야 한다.
정권교체 위해 자신 던져야
안철수가 앞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자신으로의 단일화를 위해 박근혜를 포함하는 3자회동을 제의한다든가, 야당 후보에게 실현 불가능한 통합 조건을 제시한다든가, 민주당 인사들을 빼옴으로써 ‘제 살 파먹기’ 정치를 한다든가, “미래가 이미 와 있다”면서 구시대의 경제전문가를 영입하여 야권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는 등의 분열적인 마이너스 정치다. 그것은 안철수 현상을 낳은 시대정신에 배치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단일 후보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처뿐인 영광이고 대선 필패로 귀착될 것이기 때문이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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