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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박근혜 비교는 넌센스다 / 이찬석 칼럼위원(아산톱뉴스/110911)

설지선 2011. 9. 12. 10:06

안철수와 박근혜 비교는 넌센스다
정치는 정치인이, 연구는 학자가
 
이찬석 칼럼위원

최근 불거지고 있는 박근혜와 안철수의 대선비교는 비교로서 끝나야하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이것을 현실 정치와 대치시켜 사실화하는 것에 필자는 반대한다.

안철수 교수는 학자로서, 기업가로서, 연구가로서 사회정화나 문화의 가치 발전에 기여해왔다. 기업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경영윤리 기반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공헌한 것은 그의 업적이기도 하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야기되는 피해를 남보다 일찍 깨우쳐 준 것도 모두 그의 앞선 예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치가 사회문화 개혁을 독점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를 정치무대로 불러들여 기성정치를 뛰어 넘는 대안의 주체로 삼아 가려는 것은 금물이다. 이미 그는 분업화된 사회의 통합 구도 안에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

역사의 기여는 이렇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 안에서 책무를 완수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한사람의 대중스타가 정치 발전을 단숨에 달성 할 수 있다는 기대는 어불성설이다.

시계가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사회는 각자의 역할에 의해 맞물려 돌아간다. 정보 분야는 안철수 교수가 잘하는 일이다. 학문의 일등이 정치의 일등일 수는 없다.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낀 세대들이 뭔가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이 뛰어 나와 구리고, 병들고, 어두운 정치판을 속 시원하게 개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뉘 뭐라 하겠는가마는 애당초 정치란 기업에게 요구하는 투명한 윤리가 실현 될 수 없는 한계성이 있다. 기업은 오너 한사람의 역량에 의해 발전과 퇴보. 개혁이 가능하다. 일당 독재의 권한이 주어진 것이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이와 반대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균형 잡힌 합의의 단계를 벗어나서는 정치는 할 수 없다.

학문에도 단계가 있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다.

씨름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모래판에 밀쳐놓는다고 그가 천하장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꽃피지 않는 군사정권시대에는 일당 독재의 전횡으로 모든 것을 단행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국민이 정치인이고, 모든 국민이 현실 정치 참여를 하는 시대에 와있다.

스타 한사람에게 역사를 바뀔 희망을 거는 도박은 말 그대로 도박일 뿐이다.

정치는 그자체가 권모술수를 요구한다. 정치인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것도 우리가 보기에는 역겨워 보이지만 정치의 역학 구도에 들어서면 방귀 안 뀌는 사람 없다.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게 소위 정치인데, 전체 국민이 찬성하는 일을 해낼 수가 없다. 정책은 어느 쪽에서는 선이고, 어느 한쪽에는 서는 악이 된다. 그렇다면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나와서 대통령이 됐다고 하자 과연 모든 국민이 만족하는 반대 없는 정치를 할 수 있고, 그러한 대안을 마련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전혀 아니다.

반찬 그릇에 반찬을 담고, 커피 잔에는 커피를 담아야 한다. 기름통에는 기름을 부어야지 기름통에 물을 담으면 안 된다.

안철수 교수는 학문의 전당에 남아 있어야 한다. 현실정치에 나와서 할 일보다 그쪽에서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으며, 의미 있는 일이다.

집안에 자식이 많은 사람이 있다. 딸 셋에 아들 셋이다. 한 배 안에서 나왔으니 생각이나 품행이나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이 고만고만하면 될 터인데 생겨 먹은 것도, 성격도 민중문화 유산인 화투장 다르듯이 모두가 다르다. 그래서 어느 자식에게는 좋은 아빠 소릴 듣고, 어느 자식에게는 나쁜 아빠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런데 어느 가장치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자식을 키우는 것도 이 모양인데 정치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정치인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다만 어느 쪽에서는 좋은 소리를 듣고, 어느 쪽에서는 시원찮은 소릴 듣는다.

이게 정치의 운명이고, 한계이다. 다만 누가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느냐는 개인의 역량문제로 남아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을 제대로 뽑아야 하지만 학문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는 순수한 국민 토종을 정치판에 불러내어 기성정치인과 비교하면서 ‘한번 바꿔보자’ 식의 요구는 사리에 맞지 않다.

세계 모든 나라의 정치가 썩었다. 윤리적으로 판단하면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역사는 발전하고 있다. 점진적인 발전을 기대해보면서 여유를 갖도록 하자. 그리고 비교 놀음을 그만하도록 하자.


 
이찬석 본지 칼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