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아파트 공화국의 미래 / 박해현 논설위원 (조선 100924)
서울에 들어선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는 1962년 주택공사가 지은 마포아파트였다. 4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전체 가구의 60%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작가 최인호의 단편 '타인의 방'(1972년)이 한국문학에서 처음 아파트와 인간 소외를 다룬 뒤에도 문인들은 여전히 아파트는 '집'으로 치지 않는다. '옆집 남자가 죽었다/ 벽 하나 사이에 두고 그는 죽어 있고/ 나는 살아 있다 그는 죽어서 1305호 관 속에 누워 있고/ 나는 살아서 1306호 관 속에 누워 있다'(김혜순 '남과 북').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책 '아파트 공화국'에서 " 한국에선 땅이 좁아서가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이 중산층 지지를 얻으려고 아파트를 마구 지었다"고 했다. 그는 1970~80년대 지은 아파트를 끊임없이 재건축하느라 과거가 쉽게 사라지는 서울을 '하루살이 도시'라고도 했다. 낡은 아파트의 재개발 문제 때문에 서울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윤영은 장편 '내 집 마련의 여왕'에서 아파트 광풍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욕망의 바벨탑 오르기'라고 했다. "요샌 지역구 국회의원이 얼마나 일 잘했나 보는 기준이, 그 동네 아파트값이라고 하더군요." 이 소설은 "정치인은 뉴타운과 재개발 기업의 CEO, 아파트 주인은 주주 같다"고 했다. 서울에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를 보곤 "한 이십 년 지나면 얼마나 흉하겠어, 서울의 아파트가 이제 다 악의 축이구만"이라고 탄식했다. ▶최근 서울시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26.7%가 지은 지 20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초구와 강남구 아파트 중 절반 이상이 20년을 넘었다. 강동구·양천구·송파구는 각각 40% 이상이다. 이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도심 속의 흉물 소리를 듣는다.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도 15년 이상 됐다. 앞으로 20년 뒤에 일어날 일은 생각도 않고 30층 넘는 초고층 아파트까지 늘어나고 있다. ▶낡은 아파트에 사람이 살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도시를 벗어나려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심 아파트가 공동화(空洞化)하는 선진국 현상을 남의 일로만 칠 게 아니다. 아파트를 짓기만 했던 산업화시대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사람이 살지 않는 '욕망의 바벨탑'들이 방치된 아파트 공화국의 미래,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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