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남인수, 그 숱한 일화들
내가 아는 남인수/고복수
그는 분명 사나이었다. 모든 일에 경우가 밝았고,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패기가 언제나 넘쳐 흘렀으니 말이다.
혜성처럼 빛나던 왕년의 인기가수 남인수가 사라져간 추억을 회상하자니 가슴은 더욱 알알해진다.
일본에다 본사를 둔 OK레코오드사 서울 지점에서 남인수 자신의 얼굴을 처음 보인 것은 단정한 학생복 차림을 한 소년시절이었다.
어느날인가, 나는 머뭇거리면서 회사 출입문을 밀고 들어서는 학생을 발견했었다. 첫 인상이 빈틈 없었고, 예의도 올바르고 침착하다고 느꼈다.
이 사람이 바로 왕년의 인기가수였던 학생 남인수였다.
테스트를 하여 본 결과 상당한 유망주여서, 회사측에서는 즉각 입사 승낙을 하였고, 교복을 입은 남인수는 어쩔 줄 몰라 싱글벙글하면서 성심껏 노래를 하겠다는 다짐을 주기도 하였다.
남인수의 첫 취입곡은 박시춘씨 곡의 '범벅서울'이었는데 크게 힛트되지는 못했다.
입사 1년 후에 남인수는 이철씨 주선으로 조선악극단에 단원으로 가입하여 일본과 북만주 등지를 순회 공연하면서 그의 기반을 닦기 시작하였다. 객지로 떠도는 동안 숱한 고역도 많았지만 각 레코오드사 특약점에서 알뜰한 후원을 준 탓에 피눈물이 쏟아질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어떤 경우에는 나 자신도 같은 단원이 되어 그들을 지켜보지만, 남인수는 언제나 깔끔한 성품이었다.
하루의 공연이 끝나고 여관방에 들면 그는 언제나 잠자리에서도 '하이칼라'머리를 망가뜨리지 않고자 퇴침을 사용하고, 반듯하게 누운 채 잠을 청하는 성미였으니 얼마나 알뜰했나를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순회공연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물방아 사랑'<박시춘 곡> '인생극장'<문호월> 등, 허다한 노래를 불러 만인의 심금을 울려 주었던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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