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인중을 긁적거리며 ― 심보선(1970∼) [동아/ 2021-08-28] 인중을 긁적거리며 ― 심보선(1970∼)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배 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중략)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자신의 늙음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