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문 - 사가와 치카 그 집 주변에는 인간의 낡은 사유가 쌓여 있다 -마치 묘비처럼 핏기 없이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나는 문득 꽃이 핀 줄 알았다 그것은 나이 먹은 한 무리의 눈이었다 (사가와 치카 시집 ‘계절의 모노클’) 눈 내린 다음 날 주말 출근길. 버스 차창 너머가 온통 하얗다. 겨울이다 새삼. 두툼하게 챙겨 입도록 만드는 세찬 바람에도, 그래 놓고도 덜덜 떨게 되는 영하의 기온에도 실감하지 못한 계절감을 저, 소복하고 새하얀 눈 덕분에 느낀다. 누가 뭐래도 겨울의 왕은 눈이다. 저것이 없다면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눈이 오면 일단 걱정이 먼저다. 길이 막히겠네. 서점 앞이 미끄러워지겠네. 귀찮고 번거롭고 위험해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한숨을 쉬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