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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김수호-동아행복시/나민애♧시깃든삶-15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첫눈 - 이윤학 (1965~ ) [2022-12-17]

설지선 2022. 12. 17. 09:54
       
       
       

      첫눈 - 이윤학(1965∼)

       
       
       

      여자는 털실 뒤꿈치를 살짝 들어올리고 스테인리스 대야에 파김치를 버무린다.

      스테인리스 대야에 꽃소금 간이 맞게 내려앉는다.

      일일이 감아서 묶이는 파김치.

       

      척척 얹어 햅쌀밥 한 공기 배 터지게 먹이고픈 사람아.

      내 마음속 환호는 너무 오래 갇혀 지냈다.

 
 
 

눈이 오면 어른들은 기쁘지 않다. 대신 오만가지 복잡한 심정이 든다. 올해도 지나가는구나 착잡한 마음이 들고, 내일 출근길은 어쩌나 빙판도 걱정하게 된다. 펑펑 함박눈이 내리면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 오도 가도 못하게 눈 속에 갇혀 세상과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눈이 오면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느리게 걷지만, 어른은 여러 가지 마음으로 느리게 걷게 된다.

눈에 대한 수많은 마음과 반응과 풍경이 있다. 그중에서 오늘은 참 특이한 것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목은 첫눈인데, 본문에는 눈은커녕 작은 눈송이 하나 안 보인다. 대신 커다란 대야에 파김치를 담그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혼자 먹으려고 담그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먹이려고 만든다. 그 누군가가 파김치를 좋아하는 건 분명하다.

그럼 대체 눈은 어디 있을까. 눈은 시에 나오지 않은 창밖에 내리고 있어야 한다. 첫눈이 오면 당신이 생각나고, 당신이 생각나서 파김치를 무치게 되었다. 그러니까 오늘의 요리는 당신 때문이면서 또한 첫눈 때문이기도 하다. 눈이 펑펑 오는 날 생각나는 사람, 배불리 먹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우리는 다들 알고 있다. 이 시를 보면 이것저것 걱정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고 눈이 올 때 파김치와 당신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앉아 좋아하는 것을 먹고 싶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