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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요즘 방식의 고요 [문화/ 2022-10-19]

설지선 2022. 10. 20. 08:50



      고요는 씨앗이니 - 정현종


      세속의 기준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러한 때의 고요,
      세상과 절연한 듯한 그 고요 속에
      마음은 오랜 병에서 회복되는 듯하다-
      아무것도 없는 고요로 붐비는 회복,
      고요로 광활하여 회복되는 마음……

      그 마음 실로 만능이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
      민감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느니.

      (정현종 시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요즘 방식의 고요



늦은 퇴근길. 버스에 앉아 피곤을 견디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다가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조용한 버스 안에 천둥만 한 소리가 울려 잠은 싹 달아나고, 무색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고마운 사람들이네. 모른 척해주는구나. 지레짐작하다가 유심히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저마다 귀에 꽂은 이어폰.

‘노이즈 캔슬링’. 외부의 소음을 지워주고 특정 소리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어디서나 방해받지 않고 음악이나 방송 등을 청취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니까 나는 늦은 밤 버스 안에서 그 기술의 성능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재미있네. 흥미로우면서도 다른 한편 걱정도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해도 알지 못하겠다. 외면과 무시에도 명분이 생겨나겠다.

그날부터 서점 손님들의 귀를 유심히 본다. 대부분 이어폰을 꽂고 있다. 계산을 위한 대화가 필요할 때도 몸의 일부인 양 여전히 이어폰을 꽂은 채다. 자발적 소격과 폐쇄적 현상에 대한 걱정을 친구에게 전해보았다. 그러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지쳤으면 그러겠나 싶어.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듣지 않기. 나름의 고요를 찾아가는 방법이 아니겠어.”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싶어서 네 말도 옳다, 정승 황희처럼 말해보았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