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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꽃씨를 심듯 말하기 [문화/ 2022-07-27]

설지선 2022. 7. 27. 19:08

[유희경의 시:선] 꽃씨를 심듯 말하기 [문화/ 2022-07-27]

 

 

꽃 한 송이 - 박승열

 

꽃 한 송이를 심는 일은 꽃 한 송이를 심는 일 꽃 한 송이를 심는 일은 꽃 한 송이를 심고 꽃 한 송이를 심고 또 꽃 한 송이를 심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저물고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데 꽃 한 송이를 심으면서 나는 꽃 한 송이를 심고 있다 그런 생각을 했다

 

- (박승열 시집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꽃씨를 심듯 말하기

 

속담이란 참 신비로운 것이다. 수많은 경험이 은유적 표현에 담겨 명쾌한 교훈을 전하는 그 한 문장은 선대가 후대에 전해주는 따뜻한 가르침이며, 은근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바로 그가 나타나는 일. 그러니 자리에 없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흉보지 말 것이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할 일이다.

 

요즘 내 고민을 속담으로 표현하자면, ‘아 다르고 어 다르다’쯤이 될 것이다. 서점에 놀러 온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급히 들어온 손님이 운전면허시험 문제집을 찾았다. 사방 시집뿐이며 입구에도 시집서점이라고 적어놨으나 종종 있는 일이다. 저희는 그런 도서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해줬다.손님이 가고 나서, 친구가 말하기를, “그런”이나 “취급”이라는 표현이 듣기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그저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지.

 

친구는 덧붙였다.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야. 다만 너는 장사 중이니까, 더 신중하게 말해야 한다는 거지. 꽃씨를 심듯이. 평소에 시를 쓸 때처럼 그렇게 말해보라고. 나는 그 말이 재미있어서 되물었다. 꽃씨를 심듯 말하기.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거야? 친구는 대답한다. 네가 시인이지 내가 시인이냐. 우리는 툭, 단단한 껍질을 깨는 싹과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