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와 할배 자세히보기

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 시:선] 빗소리 듣기 [문화/ 2022-07-13]

설지선 2022. 7. 13. 19:35

[유희경 시:선] 빗소리 듣기 [문화/ 2022-07-13]







    사랑만 남은 사랑 시 - 정재율


    더 청렴해진 마음으로
    빗방울을 그렸다

    붓과 물감으로
    더 자세하게 그렸다

    사랑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창문을 닦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써진 편지를 발견했다

    턱을 너무 오래 괴어
    팔꿈치가 아파 왔다



    ('정재율 시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빗소리 듣기



섭외 이메일이 왔다. 지역 서점을 소개하는 영상 촬영을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다. 문득, 한 서점이 떠올랐다. SNS에서 본 서점이었다. 안동에 있는 곳으로, 고택을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궁금했었다. 그럴듯한 핑계가 생겼구나. 나는 거절의 내용을 지우고, 혹시 안동으로 가서 촬영할 수 있다면 용기를 내어보겠노라고 적어 발송 버튼을 눌렀다.

서점은 근사했다. 때마침 먹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검푸른 기왓장들은 오랜 시간의 현현인 양 포개어져 가만하고 고요했다. 삐걱대는 툇마루에선 오래된 나무 냄새가 풍겼다. 나는 멋진 곳에 오게 됐다는 기쁨과 멋짐을 알아봤다는 우쭐함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촬영 장비를 철수하느라 작은 마당이 분주해졌다.

돌아가는 차 시간은 다가오고, 들이치는 비에 젖어가고 비는 그칠 기색이 없었다. 짜증과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던 마음이 빗소리를 듣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것은 여러 가지였다.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마루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빗소리를 빗소리로 들은 것이 언제였나. 빗소리는 그저 우산을 펼쳐 들 때라는 신호였다. ‘그것’을 ‘그것’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 그것이 여유겠다. 나는 빗소리에 몰두해 잠시 다 잊고 말았다. 그때쯤 누가 “하늘 좀 봐요” 하고 외쳤다. 그 손끝엔 구름이 걷혀가는 하늘이 있었다. 아름다웠다. 거기 다름 아닌 ‘하늘’이 있었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