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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김수호-동아행복시/나민애♧시깃든삶-15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음악 - 이성복(1952∼) [동아/ 2021-09-11]

설지선 2021. 9. 11. 10:11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음악 - 이성복(1952∼) [동아/ 2021-09-11]






    음악 - 이성복(1952∼)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본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중에 천재 작곡가라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절대음감에 청음력도 뛰어나다고 들었다. 한동안 그가 작곡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꿈을 꾸고 났는데,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걸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이 곡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말하던 어린 작곡가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작곡가는 꿈을 꾸고 곡을 쓰기도 하는구나. 신기했는데 생각해보니 시인도 비슷하다. 꿈을 꾸고 나서 바로 시로 옮기려고 했는데 펜과 종이가 없어 잊었다고, 이후로는 머리맡에 늘 메모지를 챙긴다는 시인을 나는 알고 있다.

진짜 꾸는 꿈만 시가 될까. 시인은 눈을 뜬 채로도 꿈과 비슷한 현실의 느낌을 포착할 수 있다. 그 예로 이성복의 ‘음악’을 소개한다. 이 시는 꿈속 같은 현실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비 오는 날, 차 안에 있으면 세상과 고립되었다는 고즈넉함에 휩싸이게 된다. 비 때문에 유리창 너머 보이는 세상은 다른 때와 좀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이럴 때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에 떨어진 듯 좀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아늑한 고립감 안에서 시인은 음악을 듣고 있다. 어쩐지 저 아름다운 음악이 진짜 세계인 듯하고, 나는 잠시 이상한 나라에 온 것만 같다. 이런 느낌은 찰나에 스치고 지나가지만 강렬하다. 비와 음악이 내 정신을 흔들어 진짜 나를 끄집어냈다는 생각도 든다. 원래 음악은 명확하게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이 시의 느낌도 그렇다. 그렇지만 분명 마음에는 오래오래 남는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