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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후흑(厚黑) 시대 -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 2020-09-02)

설지선 2020. 9. 4. 09:30

[태평로] 후흑(厚黑) 시대 -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 2020-09-02)


‘후흑학’은 외세 위협에 맞서, 낯 두껍고 속 검으라는 것
文 정권은 北中에는 솔직 투명 ,국민에겐 거짓말과 편 가르기


청나라가 망할 무렵 리쭝우(李宗吾)라는 사람이 후흑학(厚黑學)을 내놨다. 얼굴 두껍고(面厚) 속이 검은(心黑) 역사적 인물들을 연구한 내용이다. 낯 두껍기는 유비가 1순위다. 아내와 자식을 적진에 두고 도망하고 같은 유씨의 땅을 빼앗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뱃속 검기는 조조가 대표적이다. 자기가 위험해지면 은인도 가차 없이 죽인다. 중국 5000년 역사의 ‘후흑’을 살폈던 리쭝우가 지금 한국을 본다면 매일 불거지는 집권 세력의 낯 두껍고 뱃속 시커먼 행태에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면후(面厚)’는 거짓말남 탓으로 표출된다. 법무장관은 ‘빅 4’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반부패부장, 공공수사부장을 전부 특정 지역 인사들로 채우고도 “출신 지역을 골고루 안배한 인사”라고 했다. 청와대는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이 ‘언성을 높이며 다퉜다’는 보도가 나오자 “한마디로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그런데 인사수석은 국회에서 “언쟁(言爭)을 했다”고 자백했다. 지소미아 파기 결정 후 “미국도 이해했다”고 했는데 미 정부는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자성(自省)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집권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부동산 폭등은 ‘전 정부 탓’ ‘야당 탓’ ‘언론 탓’이라고 한다. 급기야 집 한 칸 마련하려는 주부와 젊은 층까지 투기 세력으로 몰았다. 북한의 대남 협박은 ‘탈북민 탓’이고 북핵은 ‘미국 탓’이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과 남 탓을 한다.

심흑(心黑)’의 특징이 토사구팽편 가르기. 윤석열 검찰이 전 정권의 ‘적폐’를 수사할 때는 “우리 윤 총장님”이었다. 그러나 조국 파렴치와 울산 선거 공작 혐의 등을 수사하자 바로 ‘제거’ 대상이 됐다. 정권 연루 비리를 캐던 검사들은 모조리 ‘인사 학살’당했다. 반면 정권에 충성한 검사는 폭행 피의자라도 승진했다. 군사 정권도 감히 하지 못했던 ‘후흑술’이다.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 실패로 정권 지지율이 떨어질 때면 어김없는 편 가르기로 지지 세력을 결집했다. 부자 대 서민, 강남 대 비(非)강남, 서울 대 지방, 친일 대 반일. 그사이 나라는 조각이 났다.

원래 리쭝우가 후흑학을 쓴 의도는 열강의 먹잇감이 된 중국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선 지도자가 뻔뻔함과 음흉함도 갖춰야 한다는 취지였다. 내부 총질에 ‘후흑’을 쓰라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우리를 위협하는 외부 적에 대해선 얼굴 얇고(面薄) 속이 투명한(心白)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핵을 움켜쥔 북한이 “삶은 소대가리” “저능한 사고” “완벽한 바보”라고 모욕해도 아무 말 못 한다. 오히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라는 거짓 환상을 만들어냈다. 북이 개성의 우리 자산을 폭파했는데도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이 더 정의롭다”는 꿈 같은 소리를 한다.

중국에도 속내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다. 대통령부터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했다. 대통령 방중을 취재하던 우리 기자가 중국 경비원에게 초주검이 되도록 얻어맞았지만 어영부영 넘어갔다. 중국 외교 수장이 서울 아닌 부산으로 가고 우리 외교장관을 안 본 채 돌아갔는데도 분명한 설명이 없다. 북·중은 한국 정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려는 건지 고민 없이 꿰뚫어 볼 것이다. 미·일도 마찬가지다.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 한국만 불참한 이유를 모를 리 없다. 리쭝우는 “(청 말) 중국이 혼란한 이유는 ‘흑‘을 열강이 아니라 인민에게 사용해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한국이 그렇다. [안용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