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산책] '남의 눈'보다 '자신'에게 떳떳할 때 행복이 찾아온다 -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조선/ 2018.12.24]
▲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他人 시선' 맞춰 살아온 한국인, 새해엔 '자기 자신'으로 옮겨야
뭔가 조금 꺼림칙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된다. 작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자기 잘못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기기도 한다. 이럴 때 생기는 마음의 불편함을 인간은 어떻게 정리할까? 그것은 인생에서 누구를 가장 신경 쓰며 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나의 삶을 지켜보는 마음속의 '관객'이 누구냐의 문제다. 이 가상의 관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지만, 크게 보면 신(神·god), 타인 혹은 자기 자신으로 좁힐 수 있다.
중세 유럽인 사고의 중심에는 기독교의 신이 있었다. 이 전지전능한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잘못을 숨기는 것은 어려웠다. 고해성사(告解聖事)와 같은 방법으로 영혼을 씻어야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이런 믿음은 일상의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도덕적 불안감이 증가하면 자신의 신체를 청결하게 하고자 하는 욕구도 증가한다. 가령, 거짓말을 한 뒤에는 입을 청결하게 해주는 구강 청결제에 대한 구매 욕구가 올라간다고 한다.
서양의 세계관은 그러나 르네상스를 거치며 큰 개편이 이루어졌다. 신(神) 중심적 사고에서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중시하게 됐으며, 심판의 두려움이 아닌 내면의 기준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일상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유교적 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늘 신이나 자신보다 타인이었다. 어떻게 행동하고 말할지, 심지어 어떤 감정을 느낄지도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며 편집을 한다. 사회심리학자 고(故) 윤진 교수는 "한국인은 자신의 생각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우선시한다"고 축약했다.
중요한 점은, 삶의 축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는 행복감이 높고 낮은 사회를 가르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작년 핀란드와 덴마크에서 현지 교수들, 고위 공무원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보여준 통계 자료들을 보며 그 나라의 사회적 부(富)가 그들의 높은 행복감의 초석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스칸디나비아의 사회적 부가 어디에서 오느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그들은 다소 당혹스러워했다. 마치 왜 호수에는 물이 있느냐는 질문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인생의 관객 비유'로 다시 물었다. 그들의 단호한 대답은 '자기 자신'이었다. 각자 스스로를 정의롭고 도덕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여기에 탑재된 가치와 이상(理想)을 지키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것이다. 누가 감탄을 하든 말든, 범칙금이 있든 말든, 그들은 자신이라는 관객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사는 듯했다.
덴마크 관광객을 위한 팁(tip) 중 현지인들에게 과한 감사나 칭찬 표현을 자제하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선의(善意)가 전제된 행동에 과하게 고맙다고 하는 것은 행위자의 순수한 의도를 다소 떨어트리는 기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높은 사람에게 과하게 숙이고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극히 피상적인 친절을 자주 접하는 우리 사회와 대조되는 온도다.
북유럽처럼 우리 또한 삶의 무게 중심을 타인에서 자기 자신으로 좀 더 옮겨 놓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타인의 눈이 의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는 내용보다 겉모습에 신경 쓰는 형식주의나 과정보다 가시적 성과에만 주목하는 결과주의를 낳을 확률이 높다. 이 모두 행복한 사회의 전형과 거리가 있다. 자신을 보며 산다는 것은 각자의 권리와 욕망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성찰과 통제가 따르는 무거운 책임감이 있으며, 타인에 대한 깊은 존중이 필요하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문다. 새해는 누구에게나 새 무대를 펼칠 기회를 준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늘 자기 자신이지만, 다가오는 해에는 자신을 지켜보는 VIP 관객석에도 자기를 앉혀 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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