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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도덕 쟁탈전'의 나라 -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조선/ 2018.12.31]

설지선 2018. 12. 31. 14:34

[데스크에서] '도덕 쟁탈전'의 나라 -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조선/ 2018.12.31]


이인열 산업1부 차장 20세기엔 국민 생활 증진을 내건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들이 많았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중국의 대약진운동이 대표적이다. 마오는 1950년대 후반 중국 농민들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며 수억 명의 중국 농민을 2만5000여개의 인민공사로 재편했다. 단기간에 서구와 미국을 추월하고 농민을 가사(家事)와 육아·노동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결과는 전대미문의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져 최소 2000만명의 중국인이 굶어 죽었다.

제임스 스콧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는 '국가처럼 보기'에서란 저서에서 이런 재앙이 생기는 원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그는 "근대 국가들은 '질서의 완성을 통해 무질서의 제거'라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한다"고 했다. 이것은 좌우(左右) 이념을 초월해 20세기 초반을 휩쓴 거대한 움직임었으며, 정권 측은 합법적 국가권력을 이용해 완전히 새로운 사회로 변환을 꾀했다는 것이다.

스콧 교수는 정권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순과 문제를 바로잡는 존재로 성숙한 시민사회를 꼽았다. 국가가 거창한 명분을 내걸어 사회를 과격하게 개조하려 할 때 시민사회가 건강하게 작동한다면 국가의 이상적, 비현실적인 계획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국가의 공상(空想)적인 계획들이 견제 없이 일사천리로 수행된다면 결과는 대약진운동 같은 재앙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의 진단을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입해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선 선의(善意)를 독점한 정권이 일방통행식으로 이상(理想)적 정책을 추구하는 데 대해 시민사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과 탈(脫)원전 이슈는 물론 끝없는 '내로남불'식(式) 적폐 청산을 보면서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은 지금 우리가 '도덕 쟁탈전'에 함몰된 21세기판(版) 조선시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8년간 공부했던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는 "한국은 화려한 도덕 쟁탈전 사회"라며 "도덕을 가지면 모든 걸 독차지하는 도덕, 권력, 부(富)가 삼위일체인 독특한 사회가 한국이다"라고 했다.

조선시대에서는 도덕만 쟁취하면 권력과 부를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당쟁(黨爭)은 상대의 능력 부족을 지적하는 것보다 도덕적 결함과 문제를 질타하는 데 집중했다. 수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 정치권은 자신의 도덕성 입증을 넘어 상대방의 부도덕함을 드러내려고 온갖 무리수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선지 최근 "한국에서 정권은 정책 실패가 아니라 도덕적 결함 때문에 잃는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같은 인류 최대 변혁기인 지금 우리는 아직도 '국가주의'와 '도덕 쟁탈전'에 빠져 있는 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