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세금 60조가 더 걷혀"… 서민 살림 빠듯한데 왜 정부만 돈이 넘쳐날까 [조선/ 2018.09.03]
거리의 稅法 전문가…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현 정부가 "향후 5년간 세수(稅收)가 60조 이상 더 걷힌다"며 일자리 대책 등에 재정 확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서민의 살림살이는 어려운데 왜 정부만 돈이 넘쳐날까 궁금했다.
김선택(58)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을 만난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가 2001년 설립한 한국납세자연맹은 시민단체 중에서 유일하게 '세금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뤄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말부터 연말정산을 소득 공제에서 세액 공제로 바꾼 데다 담뱃세를 올렸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돼 이 혜택을 고스란히 다 보고 있는 셈이다. 또 현 정부는 매출액이 큰 대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올렸고 소득세의 최고 세율도 적용했다. 여기서 10조원이 증세된다. 종부세도 조만간 더 올리겠다고 하니 역대 최고의 부자 정부가 될 것이다."
▲ 김선택 회장은“우리 납세자는‘중부담’하는데 세금이 새는 바람에‘저복지’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
"영국에서 의회민주주의가 시작되고 미국에서 독립운동이 촉발된 것은 세금 문제 때문이었다. 좋은 국가란 세금을 공정하게 걷고 낭비 없이 제대로 쓰는 국가다.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포함해 국민 전체가 세금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가령 현 정부에서는 담뱃세로만 20조쯤 더 거둬들인다. 가난한 서민들이 담배를 더 많이 피운다. 결국 저소득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지금의 일자리안정기금을 만드는 격이 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끄러운 편의점의 경우 판매액 중 1위가 담배라고 한다. 담뱃값의 74%가 세금이다. 이 때문에 편의점주들은 '정부를 대신해 세금을 거둬주고 있는데 담배 판매에 대한 카드 수수료를 인하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하루 한 갑 피우면 일 년에 121만원 세금을 내게 된다. 이는 연봉 4700만원의 근로소득세, 시가 9억원 아파트의 재산세와 같다. 지금 여당은 야당 시절 담뱃세 인상을 반대했다. 자신의 논리라면 담뱃세를 낮춰야 한다. 하지만 이미 정부 예산으로 쓰고 있으니 입을 닫고 있다. 정부는 더 부자가 되고 국민은 더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는 '거리의 세법 전문가'로 통한다. 하지만 세무사 자격증은 없다. 창원대 재학 시절 세무사 시험을 몇 번 봤지만 두차례 낙방했다. 그 뒤 1988년 ㈜한양에 입사해 경리부에 배치됐다. 1994년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추징금 480억원이 부과됐을 때 그가 맞붙어 전액을 취소시켰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법 전문서 '지방세법상 비업무용토지와 조세법 실무'를 출간했다. IMF 시절 퇴사한 뒤에는 '판례법인 세법'을 썼다. 삼일회계법인에서도 잠깐 일하다가 '한국납세자연맹'을 조직해 시민운동가로 나선 것이다.
그동안 연말정산 환급운동, 부당한 자동차세 불복운동, 근로소득세 환급운동, 중증환자 소득세 환급운동, 자영업자 소득세 환급운동 등을 해왔다. 실제 이 단체에서 제공한 '연말정산 소득공제 환급 도우미 서비스'를 통해 3만5000여 명이 300억원의 환급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어떤 종류의 세금이 가장 많이 늘었나?
"건강보험료가 최근 4년간 35조9000억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다. 이어 근로소득세, 취득세, 국민연금, 법인세 순이다."
―건강보험료는 의료복지 지출 상승으로 올린 것이지 정부 수입이 아니지 않은가.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건강보험 혜택이 늘어나기를 원하지 않나?
"어쨌든 국민 입장에서는 세금을 더 거둬가는 것이다. 이런 세금이 잘 쓰이면 몰라도, 정치인들은 선거 때가 되면 틀니와 CT, MRI 등을 건강보험으로 다 해준다고 공약한다. 이는 결국 누군가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뜻이다. 농촌에서 면장을 하는 내 친구 얘기로는 한의원에서 매일 봉고차로 동네 노인들을 실어나른다고 한다. 한의원에서 마사지와 물리치료를 받는 게 노인들의 하루 일과가 됐다. 한의원은 노인에게 1500원을 받지만, 국가에는 1만원을 청구한다. 건강보험료가 병에 걸린 어려운 사람들에게 쓰이면 좋지만 이렇게 낭비된다."
―그럼에도 복지를 위해 증세(增稅)를 더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작년에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26.9%, OECD 국가의 평균 국민부담률은 34.3%였다.
"우리의 국민부담률이 매년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진보 정당에서는 '중부담 중복지'로 올리자고 하는데 이게 '팩트'가 틀렸다. 우리는 이미 '중부담'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저부담'으로 인식하고 있느냐, 그 한 예가 부담금이다. 가령 수도요금에는 수질 개선 등의 공익사업을 위해 현재 물 1톤(㎥)당 170원의 '물이용부담금'이 포함돼 있다."
―부담금을 포함시키는 게 크게 문제가 있나?
"수질 개선은 국가가 수행해야 할 당연한 의무이며 일반 예산으로 해야 할 사업이다. 부담금의 실체는 세금인데 대부분 국민은 이런 세금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담뱃값에는 국민건강증진기금, 전기요금에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석유 가격에는 석유수입·판매부과금이 포함돼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를 세금에 산입한다."
―우리는 조세 통계에서 뺐다는 뜻인가?
"그렇다. 이런 부담금 종류가 95개이고 한 해 징수액만 20조가 된다. GDP의 1.2%가 된다."
―왜 이런 식으로 징수하는가?
"부담금이 많은 이유는 정부 신뢰가 낮아 조세 저항이 심하기 때문이다. 관료들 입장에서는 부담금으로 징수하면 국회 통제도 느슨하고 쌈짓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종량제 봉투나 복권 수입, TV 시청료도 세금으로 잡고 있다. 이런 걸 따져보면 우리나라 납세자는 저부담이 아니라 '중부담'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부담 저복지' 국가다. '중부담'을 하는데 '저복지'가 된 것은 세금을 엉뚱한 놈이 해 처먹거나 새고 있다는 뜻이다. 특수활동비에서 보듯이 공무원들이 세금을 쓰면서 영수증도 제출하지 않는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러니 정부 신뢰가 낮은 것이다."
―특수활동비를 집에 들고 가 생활비에 보태 쓰는 경우도 있었다. 국정원과 국회에서는 이미 문제가 됐는데.
"국세청도 44억원의 특수활동비가 있다. 세금을 걷는 국세청은 더욱 투명해야 하는데, 왜 그런 영수증 없는 돈이 필요한가. 국정원을 제외한 19개 정부 기관의 올해 특수활동비 예산이 3216억원이다. 스웨덴은 전 공무원의 개인별 연봉까지 공개한다. 110만명이나 되는 한국 공무원은 평균 연봉만 공개하지 직종별·직급별 평균 연봉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 장하성(왼쪽)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뉴시스 |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에 대해 어느 쪽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국민의 피와 같은 세금이 제대로 쓰였으면 좋겠다. 현 정부의 일자리 대책으로는 진짜 일자리가 생기지 않고 설령 생겨도 좋은 일자리일 수가 없다."
―이런 세금 부담을 특히 직장인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봉급 인상이 안 되는 면도 있겠지만.
"과세에서 근로소득자가 타깃이다. 근로소득세는 누진세고 명목임금만 올라도 증세가 된다. 건강보험료도 명목임금이 올라가면 더 뗀다. 과세의 공정성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주식으로 엄청나게 재테크해도 양도세가 없다.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부동산 임대인이라서, 사업자라고 해서 세금을 적게 내는 경우가 너무 많다."
―2016년 기준으로 세금을 안 내는 '면세자(免稅者)' 비중이 전체 납세자 대상의 43.6%이다. 인원수로는 774만명이다. 형편에 따라 세금을 얼마라도 내야 국민으로서 소속감이 생기는 게 아닐까?
"간접세로 내는 게 있으니까. 물론 면세자 비중이 높은 게 사실이다. 이는 면세자들이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한 게 아니고, 정부의 잘못으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가?
"2014년 연말정산 소득 공제를 세액 공제로 바꾸면서 '연봉 5500만원 이하는 세금이 한 푼도 안 오른다'고 기재부가 발표했다. 우리가 계산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정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했다. 그 파동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연봉 5500만원 이하에게 세금이 안 오르도록 조정하다 보니 면세자 비율이 크게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얼마 전 자영업자·소상공인층에서 최저임금 등으로 못 살겠다고 들고일어나자, 국세청이 무마책으로 소규모 자영업자 519만명(전체 개인사업자 중 약 89%)에 대해 세무조사를 내년 말까지 유예해주겠다고 했는데.
"조선시대 왕이나 하는 방식이다. 대통령도 법 아래 있다. 법에 의해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것인데 여론이 안 좋아 표 얻으려고 이런 짓을 한다. 표가 법 위에 있나. 탈세자들이야 좋겠지만 법을 지키는 쪽은 어떻게 생각하겠나. 법이 신뢰를 받으려면 공정해야 한다."
―어쨌든 자영업자에게 실제 혜택이 돌아가면 좋은 일 아니겠나?
"이는 세금 '면제'가 아니라 '유예'인데, 1년 지나면 미납부액에 대해 10.95%의 가산세가 오히려 늘어난다."
좋아할 게 별로 없는 세상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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