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의 麗水漫漫] 그렇다면, 우린 벌써 망했어야 한다!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 [조선/ 180207]
비관론만 늘어놓는 전문가들, '비겁한 神 놀음'과 다름없어미래는 '기억의 공유'에서 온다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 |
경제 전문가의 미래 예측도 마찬가지다. 차이라면 골프 드라이버 광고는 항상 좋아진다고 하고, 경제 전문가는 항상 나빠진다고 한다는 거다. 새해가 되면 각종 미디어에 경제 전문가들의 올해 경제 전망이 실린다. 죄다 어려울 거라고 한다.
난 살면서 "올 한 해 경기(景氣)는 아주 좋겠습니다"고 하는 경제 전문가의 예측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우리 경제의 미래는 항상 나쁘고 어렵다. 그들의 예측이 옳았다면 한국 경제는 이미 망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 경제는 매년 성장했고,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골프 드라이버 광고야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경제 전문가는 왜 그따위 '거지 같은 미래 예측'을 하는 걸까? 욕먹지 않으려는 거다. "나빠질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가 경제가 좋아지면,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좋아졌으니 남 탓할 이유가 없는 거다. 경제가 실제로 나빠지면,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세상에 가장 상대방 좌절시키는 말이 "내 그럴 줄 알았어!"다. 그건 '전지전능한 신(神)'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경제가 좋아질 거다!"라고 예측했다가 나빠지면, 그 경제 전문가는 쏟아지는 비난을 견디기 힘들어진다.
▲ ‘기억의 신 므네모시네(Mnemosyne)’. /그림=김정운 |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세계는 합리적으로 작동한다'던 근대 계몽주의 신념의 몰락이 오늘날 냉소주의의 출발이라고 진단한다. 슬로터다이크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도구적 이성(instrumentelle Vernuft)'에 관한 하버마스의 비판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는 '냉소적 이성(zynische Vernuft)'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냉소적 이성'은 아주 비겁하고도 위선적이다. 스스로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가치를 근본적으로 신뢰하지도 않고, 주장하는 대로 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위선적 가치는 자신과 관계없는 타인의 비난에만 사용될 뿐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미래 예측의 '비겁한 신 놀음'이야말로 '냉소적 이성'의 전형적 형태다. 슬로터다이크는 냉소적 이성을 극복하려면 "살아온 대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이제까지 했던 말들을 제대로 기억할 때, 이 무책임한 냉소주의가 극복된다는 거다.
슬로터다이크는 '냉소적 이성'이 지배한 대표적 사례로 '인터벨룸(interbellum·전쟁과 전쟁 사이)' 시대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을 들었다. 이 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문화학자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는 평생 우울, 망상, 불안, 공포에 시달렸다. 시대와 불화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도 부정했다. 말년의 바르부르크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를 통해 그 지긋지긋한 정신질환에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므네모시네로 이름 붙인 자신의 함부르크 사설 도서관에 벽면 가득히 온갖 자료들을 붙여 놓는 방식으로 자신의 '문화 기억'을 '재편집'했다. 바르부르크는 기억 작업을 하며 '신은 디테일에 있다(Der liebe Gott steckt im Detail)'는 말을 반복했다고 '서양미술사'로 유명한 그의 제자 곰브리치(Ernst Gombrich)는 기억한다. 집요하고 자세한 기억만이 '냉소적 이성'과 시대적 우울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전능한 신 놀음'이 아니다. 그렇게 꼬이도록 내버려두고 뒤늦게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신은 가짜다. '귀신'이다! 진짜 신은 '기억의 디테일'에 있다. 비겁한 미래 예측이 난무할수록 아주 자세하게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숨기기에 능한 냉소주의'와 '말 바꾸기에 능한 냉소주의'가 난무한다. 한쪽은 "은폐한다"고 상대방을 비난하고, 다른 쪽은 "거짓말한다"고 상대방을 비난한다. 해결책은 아주 디테일한 기억뿐이다. 은폐했던 과거, 수시로 거짓말했던 과거를 아주 자세하게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미래가 열린다.
하나 더 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가"에 대한 기억도 아주 디테일하게 공유해야 한다. 핵폭탄의 위협이 난무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분단의 상황에서 온 인류의 겨울 축제 '평창올림픽'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한 기억도 공유해야 한다. 더 이상 굶주리지 않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 '한류(韓流)'의 풍요로움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한 아주 자세한 기억도 공유해야 한다.
'공유하는 기억'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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