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독대에서 모든 문제 시작”…법이 없다면 벌도 없다 - 이명건 사회부장 [동아/ 2018-01-10]
[오늘과 내일/이명건]
“독대에서 시작했습니다. 원해서 간 것도 아니고 오라니까 간 거지만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난해 12월 27일 2심 결심공판 최후 진술 한 대목이다. 그는 그날까지 10개월 10일 동안 구치소에 갇힌 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얽힌 과거사를 곱씹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제대로 짚었다. 특검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최순실 씨를 한꺼번에 뇌물죄로 엮은 그림의 출발점이 바로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단둘이 만난 ‘독대’였다. ‘독대→청탁→돈→대가.’ 이 네 단계 중 지금까지 분명한 사실로 드러난 것은 독대뿐이다.
나머지 ‘청탁→돈→대가’는 각 단계와 연결고리 모두 논란이다. 어느 한 단계, 연결고리 하나만 빠지거나 흔들려도 뇌물죄는 성립되기 어렵다.
특검은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진술과 정황을 확보했다. 특검 수사기록은 A4용지 6만 쪽에 달했다. 이 기록을 넘겨받은 검찰은 보강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청탁’부터 깔끔하게 입증이 안 됐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은 각각 청탁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고 진술했다. 독대를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제3자는 없다. 녹취나 영상 등 물증도 없다.
1심 판결문엔 재판부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청탁이 ‘적극적, 명시적’인 게 아니라 ‘묵시적’이었다고 했다. 말없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경영권 승계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청탁이 필요 없는 ‘단순수뢰죄’가 적용됐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 ‘돈’에도 있다. 삼성 돈을 받은 사람이 청탁을 받았다는 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 민간인 최 씨라는 점이다. 통상 ‘단순수뢰죄’는 공무원이 직접 돈을 받은 경우에,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해 민간인이 돈을 받은 경우에 적용된다.
2심 재판부는 이를 감안한 듯 특검 측에 ‘제3자 뇌물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도록 했다. 특검과 1심 재판부의 ‘단순수뢰죄’ 적용이 잘못이라는 심증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제3자 뇌물죄’는 ‘구체적, 명시적’ 청탁이 확인돼야 인정되기 때문이다.
즉 ‘단순수뢰죄’는 돈 받은 최 씨가 공무원이 아니라서, ‘제3자 뇌물죄’는 이심전심 청탁이라서 적용하기 애매하다. 1심 재판부는 이 구멍을 ‘공동정범’ 개념으로 메웠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씨가 각각 뇌물을 요구하고 받기로 사전 모의를 했기 때문에 최 씨가 돈을 받은 게 박 전 대통령 뇌물 수수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 모의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역시 정황뿐이다.
법이 없다면 벌도 없다. ‘단순수뢰죄’나 ‘제3자 뇌물죄’를 이리저리 돌려 막는 게 정상일까. 존 롤스는 저서 ‘정의론’의 ‘법의 지배’ 편에서 “‘법이 없다면 벌도 없다’는 신조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 그것이 불확실한 만큼 자유가 제한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검의 그림 ‘독대→청탁→돈→대가’가 사실에 부합할 수도 있다는 의심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마지막 단계 ‘대가’에 해당된다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박 전 대통령이 합병에 얼마나 개입했는지가 불분명하다. 또 당시 여론은 합병 찬성이 대세였다.
의심은 의심일 따름이다. ‘입증이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로 충분하지 못한 경우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2월 5일 선고에서 어떻게 판단할까. [이명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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