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그림 하나가 대수이겠냐고? -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 2017.11.28]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는 외숙부, 숙모와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지나게 된 다아시의 저택을 보고 그의 구혼을 모질게 거절한 것에 대해 후회 비슷한 마음이 든다. 그것은 그 저택의 부동산 가치 때문이 아니고, 위풍당당하지도 않고 과시적인 치장도 없이 자연과 편안한 조화를 이룬 저택을 보니 다아시가 자기가 생각했듯 거만하고 배려심 없는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제인 오스틴 시대에는 오래된 장원(莊園)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대부분 돈을 처들여 요란하고 천박하게 고치고 치장해서 그 장원의 유서와 정감을 말살하곤 해서 오스틴의 개탄을 샀다. 다아시의 저택은 내부 역시 과시적 요소가 배제된 절제되고 품격 있는 공간이어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다시 보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 '촛불'이라는 가로 11m 세로 3.6m의 대형 그림을 걸었다고 한다. 그 속에는 촛불 광장의 수많은 피켓이 그려져 있는데 인터넷에 비스듬히 비친 사진으로는 '재벌총수 구속하라'와 '탄핵' '박근혜' 정도의 구호가 보였고 커다란 면도칼이 뚜렷이 보였다.
▲청와대 본관 로비에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이어진 촛불집회 모습이 담긴 대형 그림이 걸렸다. 이 그림은 임옥상 작가가 그린 '광장에, 서'라는 작품으로 30호 캔버스(90.9㎝X72.7㎝) 108개를 이어 완성한 그림이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그 그림이 "우리 정부 정신에 부합하고 정말 좋아" 보여서 걸었다고 했다니 문 대통령의 인품과 안목을 반영하는 그림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청와대의 주인이 아닌 세입자로서 청와대를 치장할 때 자신의 취향보다는 국가의 이미지와 품격, 그리고 그림이 보는 사람에게 야기할 심리적 반응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그 그림이 걸린 방으로 재벌 총수들을 불러 생맥주를 따라주면서 투자를 더 하고 고용을 늘려서 우리 경제를 살려달라고 부탁할 작정인가? 외국 경제사절단을 그 방에서 접견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가 튼튼하니 투자하면 절대 안전하다고 보증할 심산인가?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은 1970년대 초에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조선업을 하라"는 난감한 명령성 권유를 받고 거북선이 들어 있는 지폐 한 장을 가지고 유럽에 가서 우리나라가 최고의 조선 국가가 될 수 있는 나라임을 '입증'해 차관을 받고 선박을 수주했다고 한다. 괴기한 분위기의 '촛불' 그림은 우리나라를 어둠이 지배하는 나라로 인식되게 할까 두렵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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