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필사적 자해 행위, 그 종말은? -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 2017.11.21]
마르셀 파뇰 '마농의 샘'
프랑스 작가 마르셀 파뇰의 1952년 소설 '마농의 샘'의 주인공 세자르(별칭 파페)는 자기를 버리고 이웃 마을 남자와 결혼한 옛 애인 플로레트의 소유지가 못 쓸 땅으로 헐값에 처분되도록 하려고 그 땅의 젖줄인 샘을 막아버린다. 자기 조카가 그 땅을 사들여 화훼 농업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그러나 플로레트의 척추 장애인(이른바 꼽추) 아들 장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땅을 낙원으로 가꾸려고 그곳으로 이주한다. 무한한 정성을 기울여 아름다운 농장을 만들지만 날이 가물면 아내와 어린 딸까지 나서서 한 시간 거리의 이웃 마을 샘에서 하루 6~7회씩 물을 길어 날라야 한다. 장이 땡볕에서 그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도 세자르는 자기가 막은 샘을 일러주지 않는다. 장은 결국 우물을 파려고 바위를 폭파하다가 바위 파편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여러 해 뒤, 세자르는 플로레트가 자기를 배반한 것이 아니고, 자기 아이를 임신했는데 자기가 전쟁에 나가서 연락이 끊어지니까 배 속 아이를 사생아로 만들지 않으려고 이웃 마을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장이 아들이었던 것이다. 옛 애인에 대한 회심의 복수가 자기의 유일한 혈육을 죽인 자해 행위였다.
절치부심해서 필사적으로 이루어 낸 보복이 결국 자해 행위가 되어버리는 일은 인간사에서 결코 드물지 않다. 우리 국민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런 자해 행위의 관객이 된다. 갖가지 명목으로 불렸던 이 가해-자해 행위는 역대 정부 초기의 필수 코스였지만, 이번엔 특히 맹렬하고 살벌해서 국민을 심란하고 개탄하고 분노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에게는 명백히 자해로 귀결하리라 내다보이는 일이 정권 주체들에게는 안 보이는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라는 칼춤은 온 나라를 들쑤시고 뒤엎어 놓는다. 그런데 적폐 청산이 나라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보다 더 시급한 일인가? 국민 혼을 빼서, 원전 건설 중단 같은 위법·탈법이 분명해 보이는 이 정부의 여러 시책과 방송 장악 강행에 대한 비판을 질식시키려는 것일까? 이 정권의 한풀이 칼날에 안보와 외교, 경제와 사회 안정이 동강동강 잘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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