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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박원순이 한강에 괴물 조형물을 만든 이유 - 김철홍 장신대 부교수 [뉴데일리/ 151117]

설지선 2015. 11. 19. 09:15

[발췌] 박원순이 한강에 괴물 조형물을 만든 이유 - 김철홍 장신대 부교수 [뉴데일리/ 151117]


(전략) 김대중 정부시절인 1999년에 영화진흥공사를 해산하고 새로운 영화정책 담당기구로서 영화진흥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진흥위원으로 문성근과 같은 좌파들이 들어가 김지미, 윤일봉 같은 노배우들을 다 쫓아내는 영화계의 쿠테타가 성공함으로 그들은 충무로에 영화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진지를 확보하였다. 이때부터 영화계는 급격하게 좌측으로 돌기 시작했다.


나는 며칠 전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는 박스오피스 기준으로 1999-2015년 기간의 역대 흥행작 1위부터 100위까지의 영화 리스트를 검토해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문제 있는 영화들이 상위권에 다수 포진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 부림 사건 당시 故노무현 前대통령의 역할을 미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 '변호인'의 광고 ⓒ영화 '변호인' 개봉 당시 이벤트 화면 캡쳐

역대 대통령 중 노무현 대통령을 미화한 “변호인(12위),”이나, 전두환 대통령 암살 계획을 다루는 유치한 내용의 “26년(100위)” 같은 영화는 내용 분석 자체가 시간 낭비이므로 일단 무시하기로 한다.


1980년 광주사태를 다룬 “화려한 휴가(24위)” 같은 노골적인 선동 영화나, 폭력적인 내용으로 반기업적 정서를 만들어내는 “강남 좌파” 수준의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3위)” 같은 저질 영화는(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포스터의 구호, “박근혜 정권 퇴진, 뒤집자 재벌 세상!”과 비슷한 정도로 저질이다) 미학(美學)적 분석의 대상이 되기에는 수준 미달이므로 일단 논의에서 퇴출시키기로 하자.


좌파 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들의 독립운동을 그린 “암살(7위, 2015년)” 역시 검인정 교과서의 역사 해석 프레임인 좌파 무장 독립운동만이 올바른 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을 선전하는 것이 너무 뚜렷이 보이므로 별도의 분석이 불필요하다.


▲ 영화 '암살' 언론시사회 당시 모습. ⓒ뉴데일리 DB

이런 영화들보다 더 심각한 영화는 관객들의 머리에서 남북 간의 이념적 차이를 지워버리고 공산주의 이념에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영화들이다.


남과 북의 이념적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영화로 그 선두주자는 쉬리(35위, 1999년)로 볼 수 있다. 평생 자기 짝과 함께 살다가 짝이 죽으면 함께 죽는 “쉬리”라는 물고기를 영화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에서는 사랑에 빠진 남과 북의 남녀 비밀첩보원을 통해 남과 북이 “쉬리” 즉, 사랑의 짝의 관계 속에 있다는 낭만적인 주제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북쪽의 공화국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사랑해야 할 짝으로 변신한다.


▲ 영화 '쉬리' 포스터. ⓒ뉴데일리 DB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포스터. ⓒ뉴데일리 DB

“쉬리”가 남과 북의 관계를 이성간의 사랑으로 그렸다면, 그 다음 해 2000년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과 북의 관계를 남자간의 우정으로 그렸다.

대한민국 육군과 인민군 병사들이 서로 오가면서 휴전선에서 우정을 키워가던 병사들은 지극히 인간적으로 묘사된다. 결국 이념 때문에 서로 총을 쏘고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여주면서 이 영화 우리의 머리 속에서 남과 북의 이념적 차이와 현재 진행 중인 남북 간의 전쟁을 상상하는 것조차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죄악으로 만든다.

“태극기 휘날리며(10위, 2004년)”는 6.25 전쟁을 소재로 하면서 전쟁을 친형제 간의 형제애로 승화하고, “웰컴 투 동막골(21위, 2005년)”는 전쟁을 “팝콘”으로 승화한다.

수류탄이 옥수수 창고에서 터져 옥수수가 팝콘이 되어 눈처럼 내리는 그 순간 관객은 우리 머리 속에 있는 모든 반(反)공산주의적 사상과 태도를 다 튀겨서 허공으로 날려 버린다. 이 영화에서 이념은 설 자리를 아예 얻지 못하고, 우리의 머리 속에서 추방된다.


▲ 영화 '한반도'의 포스터. ⓒ뉴데일리 DB

▲ 영화 '괴물' 포스터. ⓒ뉴데일리 DB

“한반도(67위, 2006년)”는 통일의 과정에서 남과 북이 일본을 상대로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이제 남과 북은 공동의 적과 싸우기 위해 “한 몸”이 될 미래를 예언한다.

“의형제(40위, 2010년)”와 “은밀하게 위대하게(26위, 2013년)”에서는 아예 남파 간첩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고, 친절하고 우리보다 더 나은 인격을 가진 우리의 이웃이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예고편의 한 장면. ⓒ유튜브 영상 캡쳐
▲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예고편의 한 장면. ⓒ유튜브 영상 캡쳐

그러나 이런 모든 작품들을 능가하는, 한국 좌파 영화역사에 빛나는 수작(秀作)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괴물(4위, 2006년)”이다.

이 영화에서 미국은 악의 근원으로 묘사된다. 미군부대에서 방류한 독극물이 한강에 들어가 돌연변이가 일어난 괴물 물고기가 등장해 무차별 인명살상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 사회에서 “괴물”이란 기호(記號)는 그 이전에는 한 번도 “미국”이라는 기호(記號)와 연결된 적이 없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이제 괴물은 곧 미국을 의미하는 상징이 된다. 괴물이 주인공의 딸인 어린 여자 중학생을 납치하고 괴물의 은신처에 고립된 교복을 입은 여중생이 공포 속에서 떨 때 관객들은 2002년에 일어난 신효순, 심미선양,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그렇다. 미제국주의의 군대가 우리 아이들을 잔인하게 죽였고, 지금 그 미국이란 괴물은 우리의 딸, 여동생을 포로로 잡고 있다. 영화에서 정부, 군대, 경찰 등 국가의 공권력은 문제를 은폐하고, 문제 해결에 전혀 관심도 없다.

그들은 무능하고 결국 두 젊은 남녀 주인공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결국 이 가족이 괴물을 죽이고 우리의 여중생을 구출한다. 민족의 젖줄인 한강에서 괴물을 죽여 제거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군대인 미군과 미국을 쫓아내는 것이며, 우리의 여동생은 미제국주의의 포로 상태에서 해방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은 이제 미국이 떠난 한반도에서 그 동안 헤어져 있던 남과 북의 한 가족의 재결합(reunion)이며, 진정한 평화의 밥상 공동체의 회복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영화의 상징과 이야기의 구조(structure)가 잘 짜여져 있다. 이 영화는 영화의 문법과 상징이 갖고 있는 힘을 활용하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만든 영화다. 이 영화가 역대 관객동원 역대 4등(1천 300만명 이상) 인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이 영화에서 미국을 괴물로 형상화한 것은 미국을 우리가 싸워 물리쳐야 할 주적(主敵)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바이러스가 경기도 분당에 퍼져서 분당을 폐쇄한 뒤 미국이 미군 폭격기를 동원해서 분당을 폭격하려고 한다는 극적 설정을 갖고 있는 “감기(87위, 2013년)”같은 영화보다 훨씬 더 반미(反美)적이다.


반미는 곧 반제국주의로 연결되고, 반제국주의 투쟁은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싸움이고 대내적으로는 재벌로 상징되는 부르주아 계급과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노동자 사이의 싸움이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여중생과 괴물의 여중생처럼 연약하게 보였던 우리의 딸, 우리의 여동생은 이제 “통진 소녀”의 더 이상 연약해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부르주아 계급이지만 저는 연약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입니다.
사회구조와 모순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 뿐입니다.”

이런 반미 정서는 2008년에는 광우병 난동으로 나타났다. 광우병은 미국을 바이러스의 근원으로 보게 하고, 반제국주의의 투쟁은 이제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투쟁이 되었다. 좌파들에게 2002년의 효순, 미선이가 죽었을 때 불타오른 반미운동은 2008년 광우병 난동을 거친 뒤 별다른 반미투쟁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5년 1월 1일 여의도 한강공원에 높이 3m, 길이 10m, 무게 5톤의 ‘괴물’ 조형물을 설치했다는 점이다. 괴물 조형물은 서울시의 ‘한강 이야기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고, 밋밋한 한강에 이야기를 입혀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자는 박원순 시장의 빛나는 아이디어로 1억 8천만 원을 들여 탄생했다. 심지어 서울시는 괴물 사진 콘테스트까지 했다.


영화 '괴물'이 개봉한 지 8년이 지닌 시점에 흉측하게 보이는 조형물을 만든 것을 놓고 세금 낭비라는 여러 가지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이 “반미” “반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기호(記號)로서 괴물 영화의 성공을 못내 아쉬워하는 사람이고, 그 시절을 잊지 못해 조형물을 만들었다는 것을 간파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수도 서울의 시장은 괴수 영화 마니아(mania)가 아니라, 반미(反美) 상징 마니아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만들어 놓은 영화 '괴물'의 조형물. ⓒ뉴데일리 DB

그리고 서울의 교육감인 조희연은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을 아직도 허물지 못하고 있다” [중략] “대중과 사회를 좀 더 급진화해서 뚜렷한 계급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2007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발췌). 이런 사람을 향해 공산주의자라고 지적하면 '철지난 색깔론'이라고 대답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국가관에 대한 질문에는 침묵하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는 역사에 관한 것이고, 역사는 우리의 시대를 통시적(通時的, diachronic)으로 보는 것이라면, 문화는 우리 시대를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통해 지금의 문화가 형성되었으므로, 현재의 문화를 분석하면 지나간 역사가 보인다.


지금 우리는 교과서 논쟁을 하고 있고, 이 논쟁은 역사논쟁이다. 역사논쟁은 본질적으로 이념논쟁이고, 그래서 지금의 이 싸움은 이념전쟁이다. 우리 시대에 이념전쟁은 총, 칼을 갖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문화적 매체를 무기로 하여 싸우는 전쟁이다. 그러므로 역사 논쟁은 문화 전쟁이다.


국정이냐 검인정이냐, 현재 교과서 내용에 문제가 있으냐 없느냐,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정반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사적 경험 뿐 아니라 문화적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에서 1999년부터 현재까지 영화를 예로 하여 보여준 것처럼 교과서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교과서 문제는 이미 문화의 문제고, 우리는 모든 예술, 문화 분야에 뿌리 내린 좌파 이념에 충실한 활동가들과 싸워 그들의 진지를 빼앗고, 그들의 손에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빼앗아 오지 못한다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이 싸움은 긴 싸움이고, 전선이 매우 넓은 싸움이다. 좌파 영화감독들은 남녀 간의 사랑을 저속하게 묘사하는 19금(禁) 영화를 잘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린 학생들이 그들의 영화를 보고 공산주의에 대해 경계심을 풀게 하고, 예술의 이름으로 공산주의에 친화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화도 이제 이념 전쟁의 장(場)으로 만든다. 좌파는 이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고, 우파는 이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지만, 결과는 똑같다. 영화는 이념의 전쟁의 전장(戰場)이다.


공산주의 이념이라는 괴물에 포로로 잡혀 있는 우리의 아들, 딸, 우리의 남동생, 여동생을 구출해오지 못한다면 그들은 머지않아 통진 소녀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그냥 낭만에 젖어 감상하고 싶지만, 지금의 정세는 영화를 분석하게 하고 현재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계속 분석하는 피곤한 일을 하게 만든다. (후략)



[발췌] 교과서 전선의 투사 김철홍 교수, 3탄을 쏘다 - 박원순이 한강에 괴물 조형물을 만든 이유 [뉴데일리/ 1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