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70대 통기타 가수의 ‘너 늙어 봤냐…’ [동아/ 2015-02-18]
‘삼십 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 부르지. 월요일에 등산 가고 화요일에 기원 가고 수요일에 당구장에서. 주말엔 결혼식장, 밤에는 상갓집∼.’ 세상의 중심에서 떠밀려난 중장년층이 공감할 법한 일상을 고백한 어느 가요의 첫 대목이다.
▷최근 음원이 공개된 이 노래 제목은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포크 1세대 가수 서유석(70)이 25년 만에 내놓은 신곡이다. 7080세대 애창곡 ‘가는 세월’ ‘아름다운 사람’ ‘홀로 아리랑’ 등으로 친숙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가슴을 파고드는 가사를 이어 간다.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뭐라해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할 거야. 서양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아랍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 볼 거야.’ 그가 곡을 만든 뒤 교회 등에서 통기타 치며 불렀더니 나이든 청중의 반응이 뜨거웠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만든 노래 영상을 유튜브에 하나둘씩 올렸다.
▷해방둥이 가수가 동세대의 마음을 보듬고 젊은층에게 세상 보는 시각을 열어 주고자 만든 노래가 빅 히트한 결정적 계기는 정치권이 제공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설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자니 윤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게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져 쉬게 하는 것. 79세면 은퇴해 쉴 나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의 노인 폄훼 발언 이후 이 노래를 주제로 한 ‘60대 어르신 자작 뮤비’ 영상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 80만 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세상 나이 구십 살에 돋보기도 안 쓰고 보청기도 안 낀다. 틀니도 하나 없이 생고기를 씹는다. 누가 내게 지팡이를 손에 쥐게 해서 늙은이 노릇 하게 했는가? 세상은 삼십 년간 나를 속였다.’ 한국 사회의 섣부른 노인 취급을 꼬집는 노랫말은 경쾌한 선율과 어울려 귀에 쏙쏙 박힌다. 설과 더불어 우리 모두 한 살씩 더 먹는다. 노년층뿐 아니라 젊은 세대도 마지막 후렴구를 되새겨야 할 이유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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