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맞지 않는 잣대 들이댄 '從北' 배상 판결 [조선/ 140813]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현대사
'북한을 편드는 것' 통상 해석을 '조선노동당 추종자'로 축소해
이 논리면 용어 처음 만들고 쓴 PD 운동권도 명예훼손 적용해야
北 국가이념 주체사상 신봉도 '종북' 직접 증거 아니라 할건가
서울고법은 정치평론가 변희재씨가 이정희·심재환 부부에게 제기했던 '종북(從北)' 의혹을 명예훼손으로 판단해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또 변씨의 주장을 인용 보도한 언론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이 결정은 여러모로 상식을 벗어났으며, 무리한 이중 잣대를 들이댔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사람에게 '수구꼴통'이란 비방을 했던 수구(守舊) 좌파권 사람들이 명예훼손으로 처벌된 경우는 없다. 만약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극우꼴통'이란 옳지 않은 비난을 수도 없이 듣는 언론인 조갑제 대표는 수백억원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문창극 전 국무총리 내정자는 '친일(親日) 반민족주의자'라는 터무니없는 음해를 받기도 했다. 나중에 문 내정자가 독립유공자의 자손이며 강연 내용도 친일·반민족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고법은 '종북'의 의미를 '조선노동당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매우 협소하게 해석했다. 그러나 이미 사회적으로 '종북'은 '북한을 추종하고 편드는 것 또는 그러한 성향'이란 해석이 통용되고 있다. 이번 2심 판결은 종북의 정의를 위와 같이 넓게 잡은 1심 판결과도 배치된다. 게다가 현재 진행 중인 통합진보당의 해산 심판에서 헌법재판소가 위헌정당 결정을 내린다면 고법 판결은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종북의 의미를 통상적인 넓은 범위로 잡았을 때 이정희·심재환 부부는 물론 통진당 전체가 종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여러 예가 있지만 필자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장면은 심씨가 KAL기 폭파사건의 범인인 김현희에 대해 북한 정권의 허위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충격적인 MBC 방송 발언 장면이었다. "김현희는 (남한이 만들어 낸) 완전한 가짜이고, 절대로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원이 아니다."
'종북'이란 용어를 제일 먼저 사용한 것은 좌파권의 민중민주(PD)계였다.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 벌어진 이른바 '담론(談論) 투쟁'이라 불린 노선 투쟁에서 진성(眞性) 종북인 NL(민족해방) 주체사상파가 비(非)종북 노선인 PD파에 압승을 거두고 '천하통일'을 이룬 것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민주노동당과 통진당에서 PD파가 당내 주류인 NL파를 비판하고 뛰쳐나오면서 정당을 따로 만들 때 강하게 자주 사용했던 용어가 바로 NL파의 '종북주의'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법원은 종북 논쟁의 원조인 현 정의당 구성원 등도 전부 명예훼손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법원은 그럴 자신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2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수정돼야 마땅하다.
종북 논쟁을 얘기하다 보니 이틀 전 항소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통진당 이석기 의원이 떠오른다. 재판부는 제보자 증언의 신빙성을 인정했지만 이석기는 제보자를 '국정원의 프락치'로 비하하면서 그의 증언이 허위라고 억지를 부린다. 그는 과거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지도급 멤버였다가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근년엔 여러 회합에서 대한민국의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파괴를 선동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 중 하나인 북한의 국가 이념이자 종교인 주체사상을 신봉했고 대한민국에 대한 테러를 선동했다는 것만큼 종북의 강력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변희재씨에게 손해배상을 명령한 고법의 논리에 따르면 이런 사실들은 단지 주체사상에 호의적이고 테러 취향이 있다는 것이지 '조선노동당을 추종하는 사람'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라고 강변할지도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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