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심에서 고통이 시작된다
하늘과 구름
‘하늘이 흐리다’, ‘하늘이 맑다’ 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하늘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다만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으면 ‘하늘이 흐리다’고 하며 구름이 없으면 ‘하늘이 맑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늘은 변함없이 본 모습대로 존재한다. 다만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자신의 눈에 비춰진 대로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도 이와 같다. 인간의 마음에는 슬픔과 기쁨이 있으나 인간의 참모습은 감정과 유리되어 본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내가 슬프다’, ‘내가 기쁘다’고 말하지만, 나=슬픔, 나=기쁨이 아님은 너무나 명백하다. 다만 나의 감정이 일시적으로 기쁠 뿐이거나, 아니면 일시적으로 슬플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착각 속에 산다. 현재 내가 기쁘면 이 기쁨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며 슬플 때는 이 슬픔이 끝없이 지속되리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참모습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초월하여 저 너머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분별심을 버리지 못하고 기쁨이 있으면 행복에 겨워하고 슬픔이 있으면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요 헛된 망상이다.
분별심에서 고통이 비롯된다
기쁨도 한때요 슬픔도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인간은 과도하게 분별심을 갖지는 않는다. 저 친구는 나를 기쁘게 하는 존재이니 설혹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그 친구에게 좋은 점수를 주어 발탁하면서 인간사회의 편가르기와 부정, 부패가 싹트게 된다. 미워함도 좋아함도 없이 무심한 마음을 가진다면 이런 분별심과 고통이 인간사회에 오늘처럼 넘쳐나지 않을 것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대표로 출전하여 여러 개의 금메달을 땄던 한국의 전 국가대표 선수도 과도한 편가르기와 파벌 때문에 도저히 한국에서는 실력대로 국가대표에 뽑힐 수 없다고 생각하고 러시아로 귀화했다고 한다. 모두가 분별심이라는 업보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그럼에도 종교인들마저 내편, 네편의 진영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편의 잘못에는 눈감고, 상대의 잘못은 침소봉대하기도 한다. 과연 이런 사람들을 종교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천주교의 사제라고 하면 평신도보다 훨씬 더 세속의 관심사에 초연하고 내편, 네편이 아니라 하느님의 복음에 집중하여 오로지 무심한 자세로 사람들을 대할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무심이라 함은 무관심과는 다른 표현이다. 자신들의 거대한 잘못에는 눈감고 상대의 티끌 같은 결함에는 현미경을 갖다 대면서 ‘조직적인 부정부패’, ‘총체적인 관권선거’ 운운하면서 끝없이 분란을 일으킨다면 이들을 어찌 하느님 앞에서 마음을 닦는 천주교 사제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불이(不二)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귀하고 천한 것도 없으며 높고 낮음도 없다. 모든 것은 하나이다. 분별심을 버려라. 분별심을 갖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내 마음의 거울에 붉은 꽃이 비치면 붉은 꽃 그대로 나타내고 하얀 꽃이 비쳐지면 하얀 꽃 그대로 거울 면에 비추어 주면 된다. 그런데 거울이 ‘아! 나는 하얀 꽃은 싫어. 아까 그 붉은 꽃은 어디로 갔어?’ 하고 분별심을 갖는 순간 고통이 시작되고 거짓과 선동이 시작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이를 꿈에도 알지 못한다. 오로지 붉은 것이 정의이고 의로움이고 평화이며 하얀 꽃은 이 세상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꽃이라는 생각만이 자신의 마음을 지배한다. 그리고 한없이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며 자신의 행태가 비난을 받는 이유도 알지 못한다. 자신은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당한 수난을 현세에서 되풀이하고 있으며,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은 ‘유다의 헤로데’요 ‘로마의 빌라도’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먼저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라. 내가 얼마나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얼마나 분별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라!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 수행의 도가 경지에 달한다면 그는 무념무상의 지경에 이른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시비지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세상은 있는 그대로 진리임에 눈을 뜨게 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하얗다. 땅은 갈색이다. 이때 내 마음은 미움도, 사랑도, 슬픔도, 기쁨도 뛰어넘어 저 건너편에 존재한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북한을 편드는 사람은 우리 편이고 자유 민주주의를 논하는 사람은 적이다.’고 생각하는 분별심도 사라진다. 분별심이 사라지면 고통도 없으며, 분쟁도 싸움도 없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흘러간다.
아무리 이런 말을 해본들 사제들이 깨닫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끝없는 편가르기, 분란, 증오, 시기심, 독재, 인권탄압, 유신회귀 등 온갖 부정적인 단어와 상념에 사로잡혀 세상을 사는, 극단적인 분별심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분별심에서 벗어나 덕망 있는 수행자가 될 수 있을까? 이들에게 단 하나의 구절을 전하고자 한다.
“내려 놓아라! 분별심도, 삶도 죽음도, 사랑도 증오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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