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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만 빨리 늙나 / 김수혜 기자 (조선/ 131214)

설지선 2013. 12. 14. 11:33
왜 우리만 빨리 늙나 / 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조선/ 131214)

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사진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깜짝 놀라는 게 삶의 '속도'다. 우리는 누구나 뭐든지 참 빨리 한다. 식당 가면 주방장은 후딱 요리하고 손님은 후딱 먹는다. 외국 갔다 한국 와서 관공서·은행 번호표를 뽑으면, 대기자 순번이 어찌나 빨리 착착 줄어드는지 "역시 대한민국!" 하고 마음으로 손뼉을 치게 된다.

우리는 느린 걸 못 참는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도 계속 걷는다. 지난해 CNN이 서울 여행 특집을 냈다. 그들이 소개한 '서울 토박이인 척하는 기술 10가지' 중 하나가 대충 이렇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계속 걸어라. 안 그러면 뒤에 오는 수백 명이 불타는 눈으로 당신의 등짝을 노려볼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대한민국을 유명하게 만든 것 역시 성취의 속도였다. 뭐가 됐건 우리는 빨리 해냈다. 경제성장도 후딱, 위기 극복도 후딱 해냈다. 심지어 국토의 외관과 국민의 매너도 후딱 바꿨다. 영국 기자 앤드루 새먼(Salmon)은 "1989년 내가 처음 여행한 서울과 지금 내가 사는 서울은 완전히 다른 도시"라고 했다. "세상엔 서울보다 잘사는 도시, 서울보다 아름다운 도시도 많아요. 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만큼 달라진 도시는 또 없을걸요."

여기까진 좋다. 문제는 우리가 늙는 것도 남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국민 100명 중 7명을 넘어서면 '고령화 사회(ageing society)', 14명을 넘어서면 '고령 사회(aged society)', 20명을 넘어서면 '후기 고령 사회(post-aged society)'라고 한다. 첫 단계에서 마지막 단계까지 가는 데 프랑스는 154년, 영국은 99년, 미국은 90년, 일본은 35년 걸렸다. 우리는 불과 26년 만에 그 길을 완주할 전망이다.

한국인만 1년에 두 살씩 나이를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야 한국인이 오래 살기는 한다. 그래도 유엔 통계를 보면, 기대 수명이 여든 살 넘는 나라는 우리 말고도 스무 곳 가까이 된다. 그야 한국인이 아이를 적게 낳기는 한다(여성 1인당 평생 1.3명 출산). 그래도 유엔 통계를 보면, 여성 1인당 평생 낳는 아이가 1.5명 미만인 나라는 우리 말고도 서른 곳 가까이 된다.

이런 의문을 풀어준 게, 최근 만난 전문가가 툭 던진 한마디였다. "고령화는 잘사는 나라의 고민이니까요. 갑자기 잘살게 된 나라가 우리밖에 없잖아요?"

유럽과 미국은 오랜 시간에 걸쳐 부를 축적했다. 수명도 서서히 늘고 출산율도 천천히 떨어졌다. 반면 우리는 1950~55년에 짐바브웨 사람만큼 요절하고(기대 수명 47.9세), 잠비아 사람만큼 다산했다(5.1명). 지금은 웬만한 유럽 국가보다 오래 살고 적게 낳는다. 유엔 통계표에서 이 정도로 이웃의 면면이 화끈하게 달라진 나라는 우리 빼고 하나도 없다.

결국 압축 성장의 계산서가 압축 고령화라는 형태로 날아왔다는 얘기다. 한국인은 지금까지 남이 못 뚫는 벽을 수없이 돌파해왔다. 하지만 이번 벽은 정말 엄청난 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