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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설지선-가황자료실/남인수★가요일생

[만물상] 남인수 50주기 / 박해현 논설위원 (조선/ 120527)

설지선 2012. 5. 28. 09:01

[만물상] 남인수 50주기 / 박해현 논설위원 (조선/ 120527)



▶문단에선 일찍 세상을 뜬 문인을 그리워할 때 그가 부른 애창곡부터 떠올린다. 마흔여덟에 암으로 타계한 김남주 시인은 생전에 남인수 노래 '고향의 그림자'를 즐겨 불렀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구슬피 부른 노래엔 가슴 아픈 슬픔이 실려 있었다. "찾아갈 곳은 못 되더라 내 고향, 버리고 떠난 고향이길래…." 남인수(1918~1962)는 한국 가요사에서 '백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미성(美聲)의 가수'로 꼽힌다.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오마는…." 1938년 부른 '애수의 소야곡'은 많은 한국인들이 한(恨)풀이 노래로 불러왔다.

▶남인수는 30년 동안 1000여곡을 부르며 때로 역사의 단면도 노래했다. 1947년 '가거라 삼팔선아'에선 분단을 피맺힌 소리로 불렀다. 1954년 '이별의 부산 정거장'엔 피란살이의 시고 매운 사연을 담았다. 남인수를 들으며 자란 고은은 시집 '만인보'에 시 '남인수'를 바쳤다. "그는 반도(半島)의 목소리였습니다/ 해맑은 색깔/ 넓은 음역/ 그리고 간드러진 굽이굽이/ 그의 나비넥타이는 퍼득여 곧장 나비로 날아 올랐습니다."

▶가요사를 연구한 시인 이동순은 "단단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카랑카랑하지만 애수와 정감으로 둘러싸인 목소리가 남인수 성음(聲音)의 핵심"이라고 했다. 소설가 김훈은 남인수 노래에서 영감을 얻어 단편 '고향의 그림자'를 썼다. 1959년 남인수가 '신라의 달밤'의 현인과 벌인 노래 대결은 가요사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한 극장에서 두 가수가 번갈아 노래하다 남인수가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하며 '낙화유수'를 부르자 승패가 갈렸다고 한다.

▶현인은 나중에 "그 양반을 도저히 못 당하겠더란 말이야"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무렵 남인수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과 사랑에 빠져 행복의 절정을 누렸지만, 폐병에 걸려 1962년 6월 26일 마흔넷에 세상을 떴다. 남인수 50주기를 맞아 6월 1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남인수 특별전'이 열린다. 옛 음반과 악보, 남인수의 삶과 시대상을 담은 영상자료를 모았다. 원로 가수들은 10일 남인수 추모음악회를 열고, 옛 가요 팬들은 남인수 250곡 전집도 낸다고 한다.

▶'송창식 세대'인 진이정 시인은 10여 년 전 시 '애수의 소야곡'을 쓰고는 세상을 떴다. 그는 '남인수' 노래를 즐겨 부른 아버지가 젊은 시절 앓았을 슬픈 꿈을 생각하며 그 시를 썼다고 했다. 세대마다 부르는 노래는 다르지만 때론 좋은 노래가 세대를 이어주기도 한다. 김소월의 시가 지금도 한국인의 애송시이듯, 남인수 노래야말로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인의 노래로 기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