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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interview] '의도적으로 외면하기' 저자 마거릿 헤퍼넌

설지선 2011. 11. 13. 10:02

[Weekly BIZ] [interview] '의도적으로 외면하기' 저자 마거릿 헤퍼넌

 

샌프란시스코(미국)=금원섭 기자 (조선/ 111112)


"탐욕·공포·집착에 눈 멀어… 우리의 뇌가 금융위기 신호 무시"


금융위기 근본원인은 불편한 진실 외면하는 뇌의 작용 때문


2008년 금융위기···자유시장에 집착한 그린스펀 FRB 前의장 파생상품 규제 풀어


CEO는 분식회계 등 장부정리로 공포 외면

 

  마거릿 헤퍼넌씨는“사람의 뇌가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를 거듭하기 때문에 위기도 반복된다. 비판 적인 사고를 길러야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원섭 기자 capedm@chosun.com)

 

 

무게 1500g 단백질 조직인 사람의 뇌(腦). 신경세포 1000억개가 온갖 정보를 처리하며 판단하고 기억한다. 모든 정보를 공평하게 대하진 않는다. 고정관념에 들어맞는 정보는 선뜻 수용한다.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고 배척한다. 생명·재산을 지키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사실이라도,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라면 두 눈을 감는다. 이 같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기(willful blindness)'가 위험을 낳는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사람의 뇌는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부류를 찾는다. 그들로부터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얻는다. 끼리끼리 어울리며 사고(思考)를 더욱 한쪽으로 몰아간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편견이 심한 사람으로 깎아내린다. 그들의 생각도 무시하고 배척한다. 개인들이 집단을 이루며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제 위험은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파이낸셜타임스·골드만삭스 공동 선정 '2011년 올해의 비즈니스 서적' 최종 후보에 오른 '의도적으로 외면하기'의 저자 마거릿 헤퍼넌(Heffernan·56)씨는 "2008년 금융위기도 사람의 뇌가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를 추구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그녀의 주장은 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다. 뇌과학은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촬영으로 특정 상황에서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포착해 인간 행동의 근원을 밝힌다.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인간의 탐욕이 손꼽힌다. 돈 욕심도 뇌의 작용이다. 돈을 세기만 해도 뇌의 특정 부위가 반응을 보인다. 코카인을 먹었을 때 쾌감을 느끼는 그 부위다. 뇌가 돈 생각에 꽂히면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여유 공간이 없다. 돈을 향해 맹목적으로 질주하며 윤리성·합법성은 외면한다."

당시 위기에 불꽃을 댕긴 것은 리먼브러더스 파산이었다. 2007년 다른 금융사들이 서브프라임 투자를 줄일 때 리먼브러더스는 오히려 투자 규모를 키웠다. 갈수록 손실이 커졌다. 리먼브러더스 경영진은 부채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대신 분식회계로 은폐하는 방법을 택했다. "숲 속에 머리만 숨기면 몸 전체가 보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타조 같았다"고 헤퍼넌씨는 비유했다.

"리먼브러더스 경영진은 엄청난 부채를 보면서 공포에 빠졌다. 가혹한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뇌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외면하기에 들어간다. 부채가 없는 것처럼 정리된 장부를 보면서 위안을 받았다. 빚이 500억달러나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영국의 법무법인·회계법인과 공모했다. 의도적으로 외면하기가 국제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글로벌 경제위기일 수밖에 없었다."

헤퍼넌씨는 "2008년 금융위기뿐 아니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2010년 BP(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의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 등 수많은 위기들이 의도적으로 외면하기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Weekly BIZ가 지난달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헤퍼넌씨를 만났다.

마거릿 헤퍼넌(Heffernan·56)씨가 태어난 곳은 미국, 자란 곳은 네덜란드, 공부한 곳은 영국이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살았다.

그녀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철학을 전공한 뒤 BBC 라디오·TV에서 프로듀서로 13년간 일했다. '20세기 여성사' '프랑스 혁명사' 등을 소재로 삼은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었다.

다음엔 사업가로 변신했다. BBC를 퇴직한 뒤 독립 영화·TV프로그램 제작자들을 위한 이익단체를 운영했다.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 조직'이라는 평가(파이낸셜타임스)를 받았다. 1994년부턴 미국에서 기업홍보, 멀티미디어, 인터넷과 관련된 기업들의 CEO를 지냈다.

전문 저술가로 나선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벌거벗은 진실(The naked truth· 2004년)' '정상에 선 여성들(Women on top·2007년)' 연작(連作)을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뇌(腦)과학으로 바라볼 때 여성과 남성이 어떻게 다른지, 이런 차이가 여성 기업가의 성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뇌과학에 대한 관심은 세 번째 책 '의도적으로 외면하기(Willful blindness·2011년)'에서 구체화됐다.

①왜 뇌과학인가?

헤퍼넌씨의 책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는 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동원해 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를 밝힌다. 사람의 뇌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보는 차단하고, 자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정보만 수용한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만 만나고 그들을 통해 고정관념과 편견에 확신을 더한다. 이젠 위기에 대한 경고가 안팎에서 울려도 들리지 않는다. 어느 날 '꽝'하는 폭발음이 들릴 때 위기를 실감할 뿐이다.

―위기를 설명하는 도구로 뇌과학을 택한 이유는.

"2008년 금융 위기를 보자. 특정 소수를 탓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다. 사람들은 필요도 없는 주택을 빚까지 내서 샀다. 은행들이 대출을 마구 내줬다. 신용평가사들은 문제 있는 은행과 금융상품에 대해 모두 눈을 감았다. 정부도 규제를 하지 않았다. 은행의 주주들도 감시를 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 모두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뭘까 생각해봤다. 바로 뇌였다. 뇌는 온갖 정보를 처리하며 판단하고 기억한다. 그리고 사람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뇌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뇌는 어떤 존재인가.

"뇌는 게으르다.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내용과 같은 정보가 들어오면 쉽게 받아들인다. 그 정보를 의심하거나 비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생각과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피곤해한다.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때 뇌는 독재자 기질을 발휘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보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무시하고 배척한다."

②의도적으로 외면하기, 왜 생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라도,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라면 뇌가 고의로 눈을 감아버리는 현상을 뜻한다.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를 일으키는 요소는 다양하다. 돈, 사랑, 이데올로기, 공포, 모방, 복종 등이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를 낳는다"고 헤퍼넌씨는 말했다.

―뇌가 하나의 요소에 집중하면 다른 요소에는 집중할 수 없는 이유는.

"뇌의 인지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뇌가 동시에 모든 정보를 수용할 수는 없다. 결국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을 통해 선별적으로 진입 허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뇌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정보는 머리 속에 들어오기 어렵다. 과로나 수면부족 상태에선 비판적인 사고가 제대로 작동을 못 한다. 이때는 특정한 정보만 수용한 뒤 맹목적인 믿음으로 연결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에 눈먼다'는 이야기가 있다. 뇌과학으로 설명해 본다면.

"뇌를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촬영하면 어떤 요소에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알 수 있다. 먹고 마시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부위, 마약을 했을 때 쾌감을 느끼는 부위는 똑같다. 사랑을 받았을 때도 같은 부위가 반응을 보인다. 사랑은 가장 강력한 본능의 하나다. 사랑은 그것이 깨졌을 때 상처를 입는 것에 대해 극단적인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바람난 남편이나 부인을 못 본 척하는 것, 아버지가 딸을 성학대한 사실을 어머니가 못 본 척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 뇌의 작용이 그렇다."

③2008년 금융 위기와 앨런 그린스펀의 뇌

헤퍼넌씨는 2008년 금융 위기의 요인으로 세 가지를 손꼽았다. 첫째 돈을 향한 사람들의 탐욕, 둘째 실패에 대한 공포, 셋째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이다. 모두 사람의 뇌가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를 추구한 탓이다. 헤퍼넌씨는 "1990년대 중반부터 파생상품이 대형사고를 잇따라 터뜨렸는데도 앨런 그리스펀(Greenspan) 전 FRB 의장은 규제를 더욱 완화했다. 이데올로기에 집착한 사람의 뇌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라고 말했다.

―그린스펀이 매달린 이데올로기가 뭐냐.

"1996년 롱텀캐피털 파산, 2001년 엔론 파산을 겪으면서 파생상품이 문제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그때마다 그린스펀은 오히려 규제를 풀었다. 이렇게 고삐 풀린 파생상품이 2008년 위기를 낳았다. 그린스펀은 자유시장보다 좋은 처방은 없다는 논리를 댔다. 그런데 그린스펀의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누구로부터 주입된 것인지 아는가? 애인 랜드(Rand)라는 여성 소설가다. 경제학자나 기업인이 아니다. 랜드는 '완벽하게 자유방임적이며 자유롭고 규제가 없는 경제 제도, 국가가 경제에 간섭하지 않는 체제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린스펀은 자서전에서 '랜드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랜드가 경제학을 공부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도…. 그린스펀은 사이비 종교 수준의 광신(狂信)에 빠진 것이다. 경제의 복잡성이 커지고 정보 격차가 생기면 자유시장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경제학의 기본원리조차 무시했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뇌는 팩트와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그 팩트와 데이터에 반박당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짓까지 벌인다."

―탐욕은 어떻게 설명하나.

"돈을 접할 때 사람의 뇌가 활성화되는 부위는 마약을 먹었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똑같다. 재미있는 실험들이 있다. 사람들을 철봉에 턱걸이로 매달리게 한다. 보통 45초 버틴다. 그런데 30달러를 준다고 하면 110초까지 버틴다. 사람들에게 단순반복 업무를 오랫동안 시켜서 피곤하게 만든다. 이때 한 팀에겐 지폐를 세도록 하고, 다른 팀에겐 지폐와 똑같은 크기의 종이를 세도록 한다. 돈을 센 팀의 피로해소가 훨씬 빨랐다. 그 돈이 자기 소유가 되는 것도 아닌데도…. 그저 남의 돈을 셌을 뿐인데도…."

―공포를 느끼면 뇌가 어떻게 반응하나.

"타조처럼 된다. 타조는 적이 나타나면 머리만 숲 속에 넣고 마치 온몸을 숨긴 것처럼 안도한다. 경영 위기에 빠진 기업 CEO들이 흔히 이런 행동을 한다. 분식회계, 부외(簿外)자금, 특수목적법인, 해외 자회사가 공포를 가리는 도구가 된다. 위기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 CEO들이 장부만 말끔히 정리해 두고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④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vs 2010년 멕시코만 원유 유출

올해 3월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때렸다. 도쿄전력(TEPCO)의 CEO인 시미즈 마사타카는 상황실을 벗어나 사무실에 숨었다. 공포 앞에 타조가 돼버린 것이다. 지난 2003년 도쿄전력은 발전소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도 조사보고서를 조작했다. 수리비용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도쿄전력의 뇌가 불편한 진실을 배척한 것이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일본의 조직 문화도 도쿄전력이 위기대응에 실패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헤퍼넌씨는 "서구 언론들은 후쿠시마 사고 보도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본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특수 사례로 몰아간 것이다. 일본의 경직된 관료주의, 관(官)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민(民), 상명하복의 기업문화가 일으킨 특별한 사고인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서구 언론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기에 빠졌다. '서구에서는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을 위로한 것이다.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는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서구에서는 같은 회사가 비슷한 사고를 반복한 경우도 많다."

―사고를 반복한 회사는 어디인가.

"BP(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이다. 2005년 3월 미국 텍사스시티에 있는 BP 정유공장에서 대형폭발 사고가 났다.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인원감축이 있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직원들은 매일 12시간, 일주일에 7일, 한 달에 29일 연속 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과로와 수면부족은 고차원적 사고능력을 둔화시킨다. 위기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사고 이후 BP는 개선 노력을 벌였다. 하지만 2010년 4월 멕시코만에서 최악의 원유유출 사고를 일으켰다. 5년 만에 위기를 반복한 것이다. 의도적으로 외면하기가 BP의 조직 전체 차원으로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⑤의도적으로 바라보기가 해법

사람의 뇌가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를 추구하기 때문에 위기는 반복된다는 것이 헤퍼넌씨의 주장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면 해결 방법도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헤퍼넌씨는 "뇌과학의 결론은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희망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외면하기와 위기의 반복을 막을 방법이 있나.

"문제 속에 답이 있다. 의도적으로 외면하기의 핵심은 사람의 뇌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똘똘 뭉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조직의 주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반드시 두어야 한다.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오는 방법도 있다. 그들은 비판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한다."

―다른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우리에겐 좋은 도구가 있다. 첫째 역사다. 역사를 공부해 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관찰할 수 있다. 아주 작은 경고음이 들려올 때 역사의 교훈에 비추어 보아서 크게 대응할 것인지, 그냥 무시할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요즘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사람들은 2001년에 있었던 엔론 파산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역사를 외면하고 현재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둘째 언론이다. 특히 탐사보도이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일으킨 파생상품을 보라. 금융회사 간부 중에도 그 복잡한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언론이 탐사보도를 통해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어야 한다. 대학이나 연구소가 할 수도 있지만 대중에겐 언론이 가장 설득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