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일 칼럼] 쌍둥이 포퓰리즘, 균형발전과 동반성장 (조선 110409)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잘하는 사람 칭찬하고 낙오자는 도와 줘야
'골고루 잘사는' 세상 가능… 대중의 인기 얻으려
자기 책임보다 남 탓만 하면 '골고루 못살게' 돼
인류에게는 '골고루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오랜 염원이 있다. 훌륭한 이상이다. 그런데 골고루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는 원리가 있다. 정도(正道)로 가면 '골고루 잘살게' 되지만, 사도(邪道)로 가면 '골고루 못살게' 된다. 인류 역사를 보면 골고루 잘사는 흥국(興國)의 길보다 골고루 못사는 망국(亡國)의 길을 택한 경우가 적지 아니했다. 왜냐하면 망국의 길은 듣기는 그럴듯하여 국민을 속이기 쉽고 따라서 대중적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정책이 그 길이다.
본래 '골고루 잘사는' 흥국의 정책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국가는 '앞서가는 자'들을 칭찬하고 '뒤떨어진 자'들의 능력개발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국가가 낙후 부문을 모두 도와주지 말고 그 중 열심히 노력하는 부문만 집중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었던 대표적인 흥국의 정책이 바로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에서는 농촌의 낙후가 도시 때문이라고 비판하지 아니했다. 농촌 낙후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정부가 농촌의 자력갱생을 도와주되 오직 자조자립(自助自立)에 노력하는 농촌만 지원했고 노력 안 하는 농촌은 절대 지원하지 아니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은 성공했다.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에 '골고루 못사는' 망국적 포퓰리즘 정책이 두 개 등장했다. 하나는 서울 때문에 지방이 발전하지 못하니 수도권 발전을 억누르고 지방으로 수도와 공기업을 이전하자는 '균형발전론'이다. 다른 하나는 중소기업이 어려운 것은 대기업 때문이니 대기업이 얻는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자는 '동반성장론'이다. 전자는 '좌파 포퓰리즘'이고, 후자는 '우파 포퓰리즘'이다. 둘 다 듣기는 그럴듯해서 대중적 인기가 있지만 국민을 오도하고 국익을 해치는 크게 틀린 정책이다.
지난 30여년간 모든 정권이 지방과 중소기업을 위한다고 '균형과 동반'을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어 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지방과 중소기업이 크게 낙후되어 있는 것은 왜일까? 흥국의 정책을 택하지 아니해서다. 지방과 중소기업이 잘 안 되는 이유를 수도권과 대기업에서 찾지 말고 지방과 중소기업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그 낙후 원인을 집중적으로 해결해 무엇보다 먼저 지방과 중소기업의 자생적 성장부터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사후적으로 균형과 동반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흥국의 길은 균형을 목표로 하는 균형발전이 아니고 발전을 목표로 하는 '선(先)발전, 후(後)균형'의 '발전균형'이다. 마찬가지로 동반성장이 아니라 '성장동반'이 정답이다. 즉 새마을운동과 같은 전략이다.
지방이 낙후된 가장 큰 이유는 지방이 자조자립할 수 있는 '돈과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돈과 권력을 다 독점하고 지방에 선심성으로 나누어주는 식의 균형발전을 해 왔다. 따라서 지방에 돈과 권력을 분산시켜 자조자립 능력을 높이는 철저한 분권화가 우선이다. 그리고 중앙의 추가지원도 자조 노력을 열심히 하는 지역만 골라서 집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점만 떠들지 말고, 중소기업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부터 찾아야 한다. 일본도 1950년대에는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때문에 중소기업이 고생했다. 그러나 꾸준한 자조 노력을 통해 1960년대 이후 중소기업의 혁신과 기술력이 크게 높아지면서 중소기업 하나가 여러 대기업에 납품하는 시장지배력의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기술혁신이고 그것을 돕는 것이 정부의 '성장동반' 노력이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기술탈취 등은 공정거래법과 지적재산권 제도를 통해 가차없이 철퇴를 가해야 한다. 이는 법치국가의 기본이다. 그러나 국가의 중소기업 정책은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기술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
수도이전을 해서 지방이 발전하는 나라가 없듯이, 초과이익공유제를 통하여 중소기업이 성장하는 나라도 없다. 이익공유제는 이론도 정책도 아니다. 수도이전이나 이익공유제나 모두 정론(正論)이 아니고 부의(浮議)이다. 부의란 그럴듯하게 들려 세간에 많이 떠돌아다니지만 실은 국민을 오도하고 나라에 유해한 주장이다. 조선시대 이율곡 선생께서는 "정론이 아니라 부의가 세간에 돌아다니면 나라가 혼란스럽고 부의가 조정 안까지 들어가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셨다. 국가발전은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듯한 발전원리가 있다. 좌파든 우파든 포퓰리즘을 따르면 나라는 망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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