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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 남의 돈 자기를 위해 쓰는 직업인 (조선/100205)

설지선 2010. 2. 5. 11:51
 [송희영 칼럼] 남의 돈 자기를 위해 쓰는 직업인 / 송희영·논설실장  (100205 )

내 돈 남 위해 쓰면 기부, 남의 돈 나 위해 쓰면 사기…
국민세금 자기 위해 쓰는 직업을 젊은이들이 선망…
'약탈자 직업' 번성하면 경제성장은 죽는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돈을 쓰는 방식은 4가지다. 우선 내 돈을 남을 위해 쓰는 방식이 있다. 기부·헌금이나 증여다. 내 돈을 나를 위해 쓰는 선택은 투자·저축이나 소비를 말한다.

남의 돈을 남을 위해 쓰는 것은 금융 중개나 예산 집행 같은 공공행위다. 마지막으로 남의 돈을 나를 위해 쓰는 방식이 있다. 이는 횡령·사기 등 범죄다.

경제가 복잡해지고 기묘한 기법의 돈거래가 늘었다고 하지만 돈 쓰는 길은 단순하다. 내 돈과 남의 돈을 구별할 줄 알면 90점짜리 인간쯤 된다. 돈 주인을 알고서 '누구를 위해 쓰느냐'까지 또렷이 분별한다면 만점짜리다.

초호화 관청 건물, 초대형 교회 빌딩 논란에서 돈의 주인과 사용처를 구별하지 못하는 부류가 한국 사회에 많아졌음을 본다.

공무원은 남의 돈, 즉 국민의 세금을 쓰는 직업인이다. 대통령이든, 안양 시장이든, 독도 경비대든 자기 돈 쓰면서 자선 활동하는 직업은 아니다.

그런데도 남의 돈 수천억원을 펑펑 헛되게 쓰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니다. 그런 부류일수록 욕심을 버리고 마치 자기 아닌 남, 즉 국민을 위한 듯 포장하는 재주가 있다. 호화판 청사를 짓는 시장·구청장이 한결같이 '주민 편의를 위해'라고 둘러대지 않는가. 마치 자기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 적선하는 것처럼 말한다.

선거용이 아니면 과시욕을 채우는 용도로 돈의 원주인에게 배신 행위를 하고서도, 흡사 이타적(利他的) 결단을 내린 양 우기는 꼴이 가증스럽다. 이들은 남이 자기를 위해 세금을 내준다는, 돈의 원초적인 출발점조차 무시한다.

인간은 신앙을 통해 위안과 평화를 얻지만 남의 돈을 쓴다는 점에서는 공무원과 종교인이 별반 다를 게 없다. 헌금을 하나님이나 부처님의 것으로 아무리 포장하더라도 원래 주인이 목사 돈, 스님 돈은 아니다.

감명 깊은 강론(講論) 같은 건전한 근로 행위로 벌어들인 소득이라고, 인생 상담을 해주고서 받은 심리 컨설팅 수입이라고, 때로는 사업이 번창하도록 교회 인맥을 연결해 주고서 받은 중개 수수료라고, 그래서 내 개인 돈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 돈은 종교 법인의 재산일 뿐, 스님·목사의 개인 돈이 될 수 없다.

교회 돈, 사찰 돈을 함부로 꺼내 쓰면 회사 돈으로 몰래 샌프란시스코에 호화 저택을 구입한 어느 재벌 3세와 전혀 다를 게 없다. 교회를 2세에게 세습해주는 원로 목사를 향해 쓰디쓴 입맛을 다시는 이유도 남의 돈으로 쌓아올린 탑을 자기 핏줄에게 상속하는 데 대한 반발이다.

가장 이타적이어야 할 직업인이 가장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나라는 경제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선진국 되어도 곧 추락한다. 경제 성장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스페인의 몰락에서 종교 과잉이 국가 발전을 가로막았던 사례를 발견했다.

스페인 교회의 파워는 16~17세기 이교도(異敎徒)와의 전쟁을 피하지 않을 만큼 막강했다. 신앙의 이름으로 유태인을 대량 학살했고, 종교재판, 화형(火刑), 국외 추방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명예와 경제력을 동시에 거머쥔 성직자야말로 젊은 엘리트가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아메리카 신대륙을 개척하고 중남미 식민지에서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위험 속에서 국부(國富)를 벌어들인 개척자보다 성직자가 우대받는 풍조는 고속 성장하던 강대국을 몰락시키고 말았다. 유럽 역사상 해가 지지 않는 국가 제1호는 끝내 무적함대를 잃고 패권국 자리를 모험가·기술자·발명가가 우대받던 영국에 넘겼다.

정치인은 물론, 공무원·성직자·시민운동가는 부(富)를 창출하는 직업이 아니다. 남이 벌어온 돈을 강제 징수하거나 헌납받아 쓰는 자리다. 온갖 궂은 일로 번 돈을 옆구리에서 쉽게 빼내 쓰는 직업인이 큰소리치고 상층부를 장악하는 나라는 경제 대국의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종교 대국(大國), 행정 대국이 되겠다면 몰라도.

가장 우수한 젊은이들이 시장 개척, 신기술 개발에 몸을 던지지 않고 공무원 시험에나 골몰하는 사회가 부자 나라가 된 사례도 없다. 영악한 두뇌로 다른 사람이 채워놓은 금고의 귀퉁이를 덥석 잘라 챙겨 먹는 기교만 발달할 뿐이다. 남의 돈을 자기를 위해 쓰는 약탈자 직업이 호황이면 경제 성장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