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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 / 박해현(조선091216)

설지선 2009. 12. 17. 12:37
[동서남북]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을 출간하면서 "프롤레타리아들이 공산주의혁명에서 잃을 것은 그들을 얽매는 쇠사슬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로부터 160년 뒤 문학평론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마르크스의 오류를 지적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여 들고 일어나라'고 하면서 '당신들이 잃을 것은 당신들을 얽매고 있는 쇠사슬밖에 없다'고 말한 게 있어요. 그런데 그 쇠사슬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바로 '밥줄'이기도 합니다. 변화도 필요하지만, 지금 삶을 살아가는 데 안정이 필요하고 그걸 존중해주면서 개선하는 방안을 만들어나가야지요."(김우창·문광훈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

2009년 여름 쌍용자동차가 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민노총 운동가 등 외부 세력은 파업 현장에서 노조의 '밥줄'을 끊는 극한 투쟁을 선동하기만 했다. 보다 못한 쌍용차 직원 부인들은 "쌍용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제발 국회로 돌아가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그들은 남의 '밥줄'을 투쟁으로 '끊어야 할 쇠사슬'로 호도하면서 자신의 '밥줄'을 이어가는 집단일 뿐이었다. 그들이 지향하는 유토피아(이상향·理想鄕)는 그들을 제외한 당사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디스토피아(암흑향·暗黑鄕)란 사실을 재입증한 것이다.

그런데 2010년을 앞둔 요즘 기업인 출신의 소설가 홍상화가 '디스토피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는 지난 2005년 한국 지식인 사회를 지배하는 좌파 이념의 이상향이 한국을 암흑향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하는 장편소설 '디스토피아'를 출간한 적이 있다. 그는 최근 인터넷 사이트(www.dystopia.co.kr)를 개설해 독자 신청을 받아 자신의 소설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그는 "앞으로 사비 1억원을 들여 10만 부 정도 나눠줄 계획"이라며 "정치적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보수단체와 손잡지 않고 나 혼자서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상대 출신의 건실한 중소기업인이었다가 늦깎이 작가가 된 홍상화가 홀로 좌파와 맞서는 21세기의 돈키호테가 되기로 한 까닭은 지극히 문학적이다. '좌편향된 독서를 한 지식인들이 진보적 민족문학을 이용해 지배계급에 대한 증오심을 전파하고 있다'는, 문학적 오용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느 진보적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을 두고 '반공 이데올로기와 수구 보수의 망령'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또한 중도 성향의 문인들은 홍상화의 소설을 문학적으로 무시하거나 그의 캠페인을 외면하기 일쑤다. 하지만 디스토피아 홈페이지에는 작가를 격려하고 책을 보내달라는 독자의 편지가 하루하루 쌓이고 있다.

홍상화의 소설은 기업인의 시각에서 자유시장경제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에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1957년)를 떠올리게 한다. 미래의 어느 날 포퓰리즘에 빠진 무능한 정치인들이 평등주의를 시장과 사회에 강요하자 혁신적인 기업인과 기술자, 예술가 등 엘리트들이 망명해버리고, 국가는 무정부상태에 빠진다는 소설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이 젊은 시절 탐독하는 등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 유토피아는 늘 멀리에 있었다. 하지만 디스토피아는 언제나 유토피아의 가면을 쓴 채 현실이 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체질적으로 반(反)이념적인 문학의 운명은 유토피아의 환상에 맞선 디스토피아의 악몽일 수밖에 없다. (문화부 차장 박해현)

조선일보, 2009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