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머금고 남편 남인수와 이혼했다(1)/김은하
연적 이난영에게 남편과 4남매를 빼앗긴 여인의 단장의 수기 !!
* 이 글은 잡지 '주부생활' 1958년 10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비록 김은하씨 시각만 반영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나, 당시 남인수-김은하-이난영 세 사람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글 내용으로 볼 때 남인수님은 1958년 10월 현재 이미 이혼을 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데군데 다소 과격한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파경 직후 김은하씨가 격앙된 감정을 토로한 글이므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남인수팬클럽 회보 제16호(2005/03)
내가 이혼하기까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달픔과 눈물 어린 생활의 연속이었음을 미리 말해 둔다.
나는 이것으로써 세상이 떠들썩하리만큼 소란했던 소문도 이에 막을 래릴 수 있는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나는 완전한 무로 돌아가고 싶으며 이제 다시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지 않으며 그렇게 되기를 은근히 빌면서 이 기회에 나의 생활의 총결산을 해 보려는 것이다.
생각하면 운명의 해였다
이제 생각하면 이해는 운명의 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에게는 다시도 있을 수 없는 중요한 시간이었으며 또한 나의 운명의 갈래길에서 나를 조종한 짓궂은 운명의 장난의 해였다고 말하고 싶다.
결혼생활 18년이란 세월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고 말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의 인생관이 이렇게 변하리라고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여성이면 누구나 자기가 가야할 운명의 길이 있다. 나는 내가 가야할 운명의 길을 이 해에 있어 더 완전히 가르킴을 받아 본 셈이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고 싶지 않다. 모는 것을 되어 가는 대로 맡겨 볼 생각 뿐이다.
3개월 이상은 못간다고 믿었다
나의 남편이었던 남(남인수)씨가 또한 나의 언니격이 되는 이(이난영)씨와 얽히다니 참으로 나는 상상하기조차 메시꺼운 일이다.
가수협회가 창설된다 또는 고(고복수)씨의 은퇴공연 등등의 일들은 모두 그들을 결합시켜 주는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그쳤으니 나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한국의 예술가를 생각해서라도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약 일년 전 이나영씨와 남인수씨와의 치정관계가 이러니 저러니 하여 지상에 발표되었을 때 나는 속으로 코웃음만을 칠 뿐 하등의 커다란 쇽크를 받지 않았다. 그것은 남편과의 18년간의 생활을 통하여 그의 인간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에게 친절한 그는 항상 여성들의 유혹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아주 그 여성에게 빠져버리는 예는 없었다. 어떤 여성을 사귀이거나 절대로 3개월 이상은 더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남인수씨와 동서생활을 한 여성들은 누구나 자기가 먼저 단념하는 법이 없었다. 꼭 나의 남편이 먼저 특툭 털고 일어나야만 했다. 그것이 한결같이 모두 3개월 이내에 곧 쉽게 청산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이 그의 습성으로 알게 되었으며 나도 상대방의 여성을 보게 되면 며칠자리이며 몇 개월자리가 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으며 내가 생각한 대로 틀림이 없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새로운 결론을 얻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아모리 많은 여성들을 상대로 하여 보지만 자기의 아내보다 나은 여성은 없다고 하는 결론을 그의 입을 통하여 들을 수가 있었으며 내 자신도 역시 꼭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이난영씨와의 관계도 불과 3개월이 지나지 못해서 청산되고 말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며 그 당시 나는 이 '주부생활'잡지에 "나의 남편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라는 요지의 글을 자신이 만만하게 계재했던 일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나의 오산이었다. 참으로 믿는 나무에 곰이 핀다고 하는 속담도 있지만 철석같이 남편의 마음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짓궂은 사람들은 은하씨 참으로 3개월이 지나도 안 돌아오면 어쩔래요...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묻는 것이었으나 나은 가벼운 어조로 안 돌아오면 말죠, 그까짓 이혼해 버리죠... 이렇게 대답은 하는 것이었으나 털끝만치도 이혼문제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나의 남편에 대해서 자신을 갖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남성을 몰랐던 탓인지 모른다.
결혼 후에 남편만을 위하여 살아 오는 온실에서 피는 꽃과 같이 세상을 너무도 모르고 남성을 너무도 모르고 살아 온 탓이라고 하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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