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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설지선-가황자료실/남인수★가요일생

가요황제 남인수를 말한다 [1]/ 어수정(남인수팬클럽 고문)

설지선 2008. 1. 28. 17:31

남인수(南仁樹, 1918~1962)

대중 가수. 한국가요사상 제1세대 가수. 세칭 '가요 황제(歌謠皇帝)'. 경상남도 진주(晉州) 출생. 아명(兒名)이 '최창수(崔昌洙)'라는 설, 최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강씨 문중(姜氏門中)에 입적되었다는 설 등이 구구하게 전해 온다.

본명(本名)은 '강문수(姜文秀)'로,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진주 제2공립심상소학교(現 '진주봉래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여기서도, '가난과 구박을 못 이겨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전구 공장(電球工場)에 취직하였다는 설, 이 곳 저 곳 떠돌며 소년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는 설(說), 10대 후반 제철 공장(製鐵工場)에 취업하기도 했다는 설(說), 일본에서 동해상업학교(東海商業學校)를 졸업했다는 설 등 분분한 이야기가 있으나 모두 확인할 수 없는 설(說)들로 보임―,

18세(1936) 되던 무렵, 중국(中國) 항주군관예비학교(杭州軍官豫備學校) 입교를 주선하던, 당시 항일 운동 비밀 결사 단체에 관여하고 있던 한 지인의 권유로 중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경상북도 성주(星州)를 들르게 되면서 당시 항일 문학 서클에 가입하여 일제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성주농업학교 학생 이갑룡(李甲龍, 약 2 년 뒤늦게 가수로 데뷔하게 되는 '백년설'의 본명) 등과도 교유하게 되는데, 뜻밖에 지인의 피검 소식을 접하매 그를 면회하러 대구(大邱)로 나와 있던 중에 인편으로 기별을 띄운 동향 출신 작곡가 탁성록(卓星祿)의 부름을 받고 급거 상경, 시에론레코드사에서 작곡가 박시춘(朴是春)을 만나게 되고, 그의 노래 솜씨에 쾌재를 부르며 탄복한 박시춘의 발탁으로 '눈물의 해협(海峽)', '비 젖는 부두(埠頭)' 등을 취입(吹入)함으로써 가수 생활로 들어서게 된다.


그 후 작사가 강사랑(姜思浪)에 의해 오케레코드로 스카웃되어 예명(藝名)을 '남인수(南仁樹)'로 하고 '범벅 서울'(1936), '돈도 싫소 사랑도 싫소'(1936)', '항구의 하소'(1937), '눈물의 사막 길'(1937) 등을 발표하여 대중의 주목을 받으면서 박시춘과 다시 조우(遭遇), '물방아 사랑'(1937), '인생 극장'(1937), '유랑 마차(流浪馬車)'(1937), '천 리 타향(千里他鄕)'(1937), '잘 있거라'(1937), '북국(北國)의 외론 손'(1937) 등을 잇달아 히트함으로써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박시춘과 함께 차후 본격적인 '명콤비'로 한국 대중 가요사에 우뚝한 산봉우리를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와 발단을 마련한다.

계속하여, 이 해(1937년) 12월에는 '눈물의 해협'을 개사(改詞)한 '애수(哀愁)의 소야곡(小夜曲)'이 출반(出盤)되어 공전의 대 히트를 기록함으로써 이난영(李蘭影) 등과 함께 가요계 최고 스타로 급부상, '대중 가수 제1호'라는 채규엽(蔡奎燁), 서너 해 앞서 등장하여 '타향(뒤의 '타향살이')', '짝사랑' 등을 불러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고복수(高福壽) 등의 인기가 일거에 퇴조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범벅 서울'은 답답한 시대 현실을 뛰어넘어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청춘[젊음]의 열정과 사랑, 술과 낭만이 서양(西洋) 춤과 노래·율동·패션 등으로 범벅이 된 채 넘쳐흐르던 1930년대 초-중반 당시 서울의 거리 풍경을 노래한 것이며, '물방아 사랑'은 황금에 멍들어 속절없는 사랑에 빠져 버린 기녀(妓女)의 애련(愛戀)을 통해 허망하고 무상한 세상 인정과 사랑의 모습을 노래함으로써 시대상과 맞물려 크게 인기를 끌었고, '애수의 소야곡'은, "이 밤"으로 표상(表象)되는 현실 즉 암흑 시대(暗黑時代)에 부재하는 "사랑·청춘" 등의 상실한 대상을 "눈물·애타는 숨결·고독한 흐느낌"을 안고 찾아 헤매는 서정적(抒情的) 자아(自我)의 애처롭고 고적한 내면적 침잠(沈潛)과 달관(達觀)한 듯한 자기 위무(自己慰撫)의 애련(哀憐) 정서를 담은 노랫말이 '상실의 시대'를 사는 민족의 보편적 정서에 직핍(直逼)함은 물론, 이전의 여느 가수와도 확연히 다른 발군의 세련미·신선미를 갖춘 미성으로 은근히 다가드는 구수한 맛과 호소력, 어루만지듯 속삭이듯 울려 오는 가창의 마력에 끌려 "외로이 잠 못 드는" 민족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면서 위안의 공감대를 폭넓게 형성해 냄으로써 끝도 없이 애창되었다.

이어서 '장전(長箭) 바닷가'(1938), '꼬집힌 풋사랑'(1938), '청노새 탄식'(1938), '울리는 만주선(滿洲線)'(1938), '항구(港口)마다 괄세[恝視]더라'(1938), '기로(岐路)의 황혼(黃昏)'(1938), '정한(情恨)의 국경(國境)'(1939), '인생(人生) 간주곡(間奏曲)'(1939), '오로라(aurora)의 눈썰매'(1939), '청춘 야곡(靑春夜曲)'(1939), '감격 시대(感激時代)'(1939), '꿈인가 추억인가'(1939), '뒷골목 청춘'(1939), '초록색 해안선'(1939), '항구 일기(港口日記)'(1939), '항구의 청춘시(靑春詩)'(1939), '안개 낀 샹하이(上海)'(1939), '울며 헤진 부산항(釜山港)'(1939) 등 히트 곡을 연발하면서 1930년대를 가요의 황금기로 장식하는 데 주역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꼬집힌 풋사랑'은 제1절을 통해 가해자, 즉 배덕·배신자의 내뱉듯 쏟아 내는 자학적인 선언 내지 변명 같은 것이 계속되다가 재2절부터 대사 부분까지는 피해자, 즉 기녀(妓女)의 처절한 독백이 항변인 듯 하소연인 듯 이어지고 제3절에 이르러서는 피해자의 골수에 사무치는 처절한 회한(悔恨)의 눈물을 내레이션으로 보여 주는데, 일차적으로는 기녀의 숙명적이고도 기구한 '풋사랑'을 노래한 듯하면서도, 기실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꾐에 넘어가 결국 헤어나지 못할 지경의 사련(邪戀)['풋사랑']에 범접, 밀착해 버린 부일(附日) 매국노가 그나마 마음의 심층에 남아 있는 일말의 본심 때문에 느끼는 일제에 대한 배신감을 숨기지 못한 채 통절한 자학적 회한에 젖어 괴로와하는 심경을 연출자적 관점에서 풍자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 존재에 잠재해 있는 본질적·근원적인 모순과 여리박빙(如履薄氷)의 인생 역정에서 자칫 빠지기 쉬운 '사랑'의 원죄론적 공범 의식 같은 것을 담고 있기도 하는 등의 함의(含意)가 많은데다 타고난 미성에 절절한 호소력을 담은 독보적 가창력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울리는 만주선(滿洲線)'은 '북국(北國)의 외론 손'과 맥락을 같이하는 노래라 할 수 있는 것으로, 1931년 9월에 중국 동북 지방 침략 전쟁을 일으켜 괴뢰 "만주국(滿洲國)"을 세운 일제가 스스로 그 행위를 "만주 사변(滿洲事變←支那事變)"으로 개칭한 이후 10 년 간 이어 가는 중국 침략 전쟁의 깊은 수렁, 일제의 대륙 침략 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후방의 보급 창고" 격으로 완전히 병참 기지화(兵站基地化)한 조선 강토, 한편으로는 "만주국 건국"과 함께 "대대적으로 장려하는 조선인의 만주 이민 정책" 강제 추진, 유랑인(流浪人)의 자의적 이주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조선 총독부(朝鮮總督府)'에 의한 '대규모 강제 집단 이주 정책' 등을 사회적·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정든 고향 땅을 눈물어린 눈으로 돌아보며 떠나야 하는 유랑민의 설움 위에 덮쳐 오는 불확실성과 전도에 대한 예측 불허의 만주행 기차 안에서 표출되는 자포자기적 불안 심리와 착잡한 내면적 갈등 등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한 노래로서 일제에 대한 민족적 반감을 대변했고,

 

'감격 시대(感激時代)'는 이미 '신춘(新春)의 도래(到來)'를 예언(豫言)했던 '기미년(己未年) 선언(宣言)'의 '감격'이 있은 이래 한 동안 침체(沈滯)와 칩거(蟄居)의 시대를 넘어 이제 일제(日帝)의 '중일 전쟁(中日戰爭, 1937.7)' 도발로 조선 민중 사이에서 끊임없이 확신에 근접하며 예단, 회자(膾炙)되던 '일제 패망'―'조국 광복'의 고무적인 분위기가 전쟁 경과 2 년에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더욱 확고하게 적중(되어 가는 시대적 기운과 아울러 기미년 그 해로부터 꼭 20 년 만에 맞이하는 의미 깊은 새 봄[신춘(新春)]의 도래라는 새로운 하나의 '감격(感激)'을, "환희(歡喜)에 빛나는 숨쉬는 거리"의 "속삭이는 미풍(微風[살랑살랑 불어 주는 봄바람])", "(희망에) 불타는 눈동자", 피압박 민족(被壓迫民族)이 지닌 유일한 자산이라 할 "내일(來日)의 청춘(靑春)"·"정열(情熱)의 바다"·"희망(希望)의 대지(大地)·꽃 피는 마을" 등으로 더없이 강렬하게 압축된 노랫말을 행진곡풍의 가락에 얹어 노래함으로써 일제 당국의 검열을 보기 좋게 따돌리며 민중에게 새로운 '활력'을 선사함과 아울러 참신한 시의성과 시대 감각·다의성 등을 한껏 뿜어내면서 묘한 여운을 단 채 '참요(讖謠)'인 듯이 애창되기 시작했다.

또, '울며 헤진 부산항(釜山港)'에는 일제의 온갖 수탈(收奪)과, "징병(徵兵)·징용(徵用)·징발(徵發)" 등쌀에 견딜 수 없어 피눈물을 뿌리며 정든 고향 땅을 뒤로한 채 해외로 떠나고 끌려가는 절박한 상황 하에 뿌리뽑힌 유랑민 신세로 전락한 이 땅의 가련·처절한 식민지 민생의 모습이 투영되어, 피압박 민중의 한이 많은 이별 내지 고별의 노래로 한없이 불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