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업어준다는 것 ― 박서영(1968∼2018) [동아/ 2021-10-02] 업어준다는 것 ― 박서영(1968∼2018)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