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어느 날 어느 때 - 구로다 사부로(黑田三郞·1919∼1980) [조선/ 2021.10.04] /일러스트=박상훈 어느 날 어느 때 - 구로다 사부로(黑田三郞·1919∼1980) 가을 하늘이 푸르고 아름답다는 그저 그것만으로 어쩐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때는 없는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허무하게 땅에 떨어지는 분수도 쓸쓸하게 가지를 떠나는 낙엽 한 잎마저 어쩐지 기쁨에 겨워 춤추는 양 보이는 그런 때가 (유정 옮김) 그런 때가 내게도 있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푸른 하늘에 떠가는 구름 한 점을 온 마음 다 바쳐 사랑하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었다.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허무하게 땅에 떨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