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 이시가키 린(1920~2004) 야밤에 눈을 떴다. 엊저녁에 산 바지락들이 부엌 구석에서 입을 벌리고 살아 있었다. “날이 새면 모조리 먹어치울 거야.” 마귀할멈처럼 나는 웃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입을 약간 벌리고 자는 것밖에 내 밤은 없었다. (유정 옮김) 깜찍한 발상이로군. 감탄하며 하하 웃은 뒤에 쓴맛이 감돈다. 시에 스며있는 페이소스에 공감하며 나는 시인이 여성임을, 혼자 사는 여성임을 알아차렸다. 야밤에 깨어나 눈을 뜨고 본 것이 하필 ‘바지락’이었다니. 침대와 부엌이 한 공간에 있어, 방금 깨어나 침침한 눈에 생명체의 살아있는 입이 포착되어 민감하게 반응한 게 아닌가. 자다 깨어 바지락을 보고 ‘저것들이 상하지 않을까? 냉장고에 넣어야지’ 따위의 걱정이 아니라 “날이 새면 모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