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나는 나를 묻는다 ― 이영유(1950∼2006) [동아/ 2021-09-18] 나는 나를 묻는다 ― 이영유(1950∼2006) 가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풍성하고 화려했던 언어들은 먼 바다를 찾아가는 시냇물에게 주고, 부서져 흙으로 돌아갈 나뭇잎들에게는 못다 한 사랑을 이름으로 주고, 산기슭 훑는 바람이 사나워질 때쯤, 녹색을 꿈꾸는 나무들에게 소리의 아름다움과 소리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거친 대지를 뚫고 새싹들이 온 누리에 푸르름의 이름으로 덮힐 때쯤 한곳에 숨죽이고 웅크려 나는 나를 묻는다 봄이 언 땅을 녹이며 땅으로부터 올라온다 우리가 이 시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가장 즉각적인 이유는 지금이 가을이라는 것이다. “가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라는 첫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