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횡단보도 ― 고두현(1963∼ ) [동아/ 2021-06-12] 횡단보도 ― 고두현(1963∼ ) 너 두고 돌아가는 저녁 마음이 백짓장 같다. 신호등 기다리다 길 위에 그냥 흰 종이 띠로 드러눕는다. 몸이 괴로우면 푹 쉬어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마음이 괴로울 때, 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황망할 때, 슬플 때, 화가 치밀 때는 오히려 걸어야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정신없이 걷고 있을 때 감정은 좀 가라앉는다. 빠른 걸음에 집중해서 괴로움을 잊어보려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이럴 때 마주치는 횡단보도와 신호등은 결코 이롭지 않다. 그것들은 억지로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다. 발길이 붙잡히면 마음도 붙잡히는 법, 괴로움은 이때다 싶어 다시 돌아온다. 횡단보도 앞에서 겨우 참았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