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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김수호-창작학습시/김수호♡미발표시 - 2

룡龍이와 랑郞이네 이야기 - 김수호 (1940~ )

설지선 2023. 9. 29. 19:13

 

 

이와 랑이네 이야기 - 김수호 (1940~ )

 

 

룡이와 랑이는 사촌지간이요

그러니까 아버지끼리는 친형제지요

룡이의 아버지가 형이고

두 형제 아래로 룡이 보다 기껏 5살 많은

늦둥이 막내 삼촌이 있소

룡이와 랑이는 같은 중학교 동급생으로

쌍둥이처럼 늘 붙어다녔소

 

룡이와 랑이의 할아버지가

돌발 사고로 세상 뜨자

할머니는 그 충격으로 반신불수가 되었소

그 와중에도 노친네 걱정은

오로지 늦둥이 막내 삼촌뿐이었소

 

할머니는 장남인 룡이 아비에게

막내의 학업과 취직 등을 돌봐주는 조건으로

막내 몫의 땅을 주었소. 그러나

위함 받으며 자란 큰아들이 못 미더워

둘째인 랑이 아비에게 따로

뒷일을 챙겨보라 하고 세상 버렸소

 

룡이 아버지는 유지를 뭉개고 

뒤탈을 예견한 듯 서둘러

장손인 룡이로 그 땅의 이전등기를 마쳤소

뒤늦게 이를 안 랑이 아버지가

할머니의 당부를 형한테 들이댔소, 허나

무슨 증거가 있느냐

문서나 증인을 대라며 되레 윽박질렀소

 

랑이 아버지는 항의 겸 호소를 했소

아무리 재산이 탐나기로 

어찌 돌아가신 부모를 팔겠냐며

더구나 어린 막내의 장래를 부탁한 몫을

그러나 장남인 룡이 아버지는

형제지연을 끊자며 대문을 잠겄소

 

몸은 핏줄로 하나인 듯 이어졌으되

마음은 늘 제각각, 그러게

형제는 남이 되는 첫걸음이라 했나!

화를 못이긴 랑이 아버지는 말술 퍼마시고

형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대신

제 목을 매어 진실을 세상에 알렸소 

 

5년 뒤 룡이 아버지도 병사하자

룡이는 막내 삼촌 몫인 그 땅을 돌려드렸소

막내 삼촌은  자기로 인해 

목을 맨 둘째 형의 아들 랑이 조카에게

그 반을 나눠주었고, 랑이는

모교에 고인 명의의 장학금으로 기증했소

실로 솔로몬의 재현이랄밖에!

 

형제 중 한 사람의 탐욕으로

갈기갈기 찟긴 일가가

장손인 룡이의 현명한 판단과

마음을 비운 덕행으로

영원히 원수가 될 뻔한 이 형제지간은

상처뿐인 복원을 이뤘다 하오

 

천지를 오르내린 룡이와 랑이는

우리 큰형의 중학교 동창

어머니 제삿날 형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소

룡이와 랑이네 집안 소식을

큰형은 한참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

말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소

 

부모는 형제의 구심점이요

형제를 묶는 밧줄

끊기고 나면 제각각 흩어지게 마련

자식은 부모를 떠나는 것

제사명절에 한자리에 모이기만 해도

더 큰 효도가 없지 싶소

 

 

(23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