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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우연의 힘 [문화/ 2023-07-12]

설지선 2023. 7. 12. 14:28

 

 

      돌아오는 우연 - 강혜빈

       

       

      우연의 눈을 보면
      흔들리는 촛불처럼 영원히
      순해질 수 있다

      우연은 찻잔을 비우고
      풀썩 일어선다

      나는 따라 일어선다

      주변을 둘러보니
      서 있다
      우리만 너무

      언젠가 같은 장면에서
      헤어진 적 있던가
      그때 레몬차를 쏟았던가

      그러나
      우연은 돌아왔다


      (강혜빈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

 

 

우연의 힘

 

 

시집서점을 운영한 지 7년이 되었다. 매년 서점 생일이 되면 이벤트를 마련했다. 낭독회를 하거나 굿즈를 만들거나. 하여간 시집서점이란 이유만으로 응원과 격려를 주저하지 않는 마음들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올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SNS에 7주년을 알리는 메시지와 간략한 감사 인사를 표하는 정도로 갈음했던 까닭은, 그간 나의 노력은 초조함에서 비롯된 것이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매해 절박했다. 종이로 만든 집인 양 가벼운 한숨에도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거구나.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심정이 나의 열심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조금 슬프다. 우연의 힘이다.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것도, 좋은 사람을 만나 적당한 자리를 제안 받게 된 것도, 열게 된 서점이 좋은 반응을 얻게 된 것도 모두 우연이었다. 뜻밖의 기회가 아니었다면 다 무용한 헛수고였을 터다. ‘시집서점’을 ‘무려 7년’이나. 축하해주고 감탄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그저 부끄러워질 따름인데.

우연이란 결국 시간의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것이다. 차근차근 살면서 차곡차곡 일과 생각을 쌓아갈 때 벌어지는 사건.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은 우연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요란을 떨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니 차분한 마음으로 오늘을 축하하기보다 내일을 준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리하여 올해 서점 생일은 조용히 보냈다. 내년 이맘때는 보다 건재한 서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