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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기다리는 희망 [문화/ 2023-06-21]

설지선 2023. 6. 21. 14:13

 

 

      앙망 - 백은선

       

       

      희망과 함께 오후의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신다

      어젯밤에 나 꿈을 꿨어
      차가운 계단에 앉아 내내 기다리는 꿈

      희망은 말한다

      나는 머그컵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본다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인다

      (백은선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기다리는 희망

 

 

서점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참이다. 옆 가게 커피숍 사장님과 마주쳤다. 목례하고 지나치려는데, 나를 부른다. “요즘 서점은 좀 어때요.” 그렇게 묻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인사치레인지 진지한 질문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는데, 그것은 진심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리숙할 정도로 순진한 구석이 있다. 불현듯 시작된 어려움이 느닷없이 끝날 리 없다는 것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확진자가 늘고 있다지만, 처음 기세만 한 것은 아니다. 하나둘 마스크를 벗고 있다. 민낯을 대할 때의 낯섦도 잠시 잠깐일 뿐 금방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뚜렷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친구 중 하나는 그것을 ‘재미’라고 이야기했다. 요즘은 사는 재미가 없다는 그의 말에 나는 예전의 재미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희망이지, 하고 대답했다. 무언가 돌아올 거라는, 보답 받을 거라는 희망.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기다릴 것이 없다. 세계는 분명 달라졌고, 우리는 적응해야 한다. 그게 옳은가, 그러면 좋아질 것인가. 그런 판단을 내릴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기다리고 있다. 어쩔 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지. 적당히 얼버무리며 커피숍 사장님과 헤어졌다. 계단을 내려오다 뒤돌아보았다.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한 사내의 뒷모습에서 알 수 없게 나는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기다리는 희망을 본 것 같았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